졸며 달리는 고속버스(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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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말짱하게 일 잘하던 회사의 중견간부가 어느날 갑자기 거짓말처럼 죽었다고 할때,대채로 사인은 과로사다.
과로사란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몰려 신경·관절 등 몸조직이 갑자기 긴장하면서 산소 소비량이 급증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예방의학을 전공하는 의학자들은 이젠 과로 자체를 심각한 질병으로 보고 이에 대한 사전예방을 권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산재에서의 과로사 보상문제도 근로자에게 유리한 쪽으로 법을 적용하겠다는 움직임이 최근 구체화되고 있다.
그러나 과로사를 당한 뒤의 보상문제보다 더 지혜로운 조처는 과로사의 발생요인 자체를 줄여나가는 일이다. 과로사의 첫 시작은 성취욕 또는 강한 책임감 때문에 발생하는 개인적 요인이 있는가 하면 업무 자체가 구조적으로 과중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개인적 요인으로 과로사가 발생한다면 개인의 조심으로 예방할 수 있다지만 어떤 조직이나 업종의 업무 자체가 구조적으로 과로사를 몰고 오는 요인이 있다면 이는 개개인의 노력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구조 자체의 근본적 개선없이는 해결되질 않는다. 더구나 그 일이 남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운송업이라면 더 말할 나위 없다.
그저께 TV 화면을 통해 본 고속버스 운전사들의 근무실태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들의 업무는 구조적으로 과로를 피할 길이 없게 되어있음을 실감케 했다. 또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그것은 당사자 개인의 불행으로만 그치지 않고 수십명의 승객과 운명을 같이 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KBS의 『가로수를 누비며』 제작팀이 조사한바로는 고속버스 운전사중 79%가 하루평균 1천㎞를 9시간동안 운행하며 그중 70%가 과로에서 오는 졸음을 쫓기위해 각성제를 복용하고 있다고 했다.
『어떻게 운전을 했는지 통 기억이 나질 않아요.』 그냥 멍한 상태에서 밤의 고속도로를 질주했다고 고속버스 운전사가 태평스레 진술하고 있는 장면을 보노라면 기가 막힌다. 자신의 목숨만이 아니라 승객의 목숨을 안고 달리는 고속버스 운전사의 과로수준이 여기에까지 이르렀다면 이는 운전사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된다. 이 사회 전체가 언젠가는 한꺼번에 과로사를 당할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단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졸고 달리는 고속버스를 마냥 방치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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