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대답없는 서해페리호 귀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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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비명액사하여 풍랑과 어둡고 차가운 바닷속을 헤매는 넋들이여,이제는 편히 잠드소서.』 2백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페리호 침몰사고 발생 한달이 지난 11일,사고해역인 위도 앞바다에서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주지 宋月珠)의 주관으로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진혼제가 열리고 있었다.
하늘도 그날의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초겨울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완도카페리호등 10여척의 배에 나눠 탄 유가족.스님.주민등 5백여명은 사고해역에 이르러 일제히 오열을 터뜨리며 국화 2천여송이를 바다에 뿌렸다.
『廷勳이가 밤마다 당신을 애타게 찾고 있어요.
왜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습니까.우리는 어떻게 살라고…』 졸지에 남편을 잃은 金順姬씨(35.서울강동구둔촌동)가 뱃전을 치며망부에 대한 절규를 해대는 가운데 배안은 온통 통곡으로 가득찼다. 부안에 「유학」중 주말을 이용해 집에 왔다 돌아가는 길이던 고교 1학년생 아들을 잃은 葛숙녀씨(40.부안군위도면파장금)는『차라리 공부를 시키지 않았더라면…』이라고 울먹이며 평소 아들이 좋아하는 시루떡을 계속 바다에 던져 넣는다.
유가족들의 오열도 잠시.
사고때부터 얼마나 쏟아댔는지 눈물마저 말라붙은듯 복받치는 슬픔을 더이상 내뱉지 못한채 선상에 주저앉은 유족들은 부모.아들.며느리.손자들을 데려간 원망의 바다를 그저 바라만보고 있었다. 차가운 바닷속을 떠도는 원혼들을 달래기 위한 스님들의 반야심경 봉독과 목탁소리마저 구슬픈 곡(哭)이 돼 무심한 해풍에 실려 날아갈 뿐이었다.
유가족들을 태운 배가「통곡의 바다」를 뒤로한채 위도로 향해 가자 사고바다를 뒤덮은 국화송이들은 희생자들의 넋과 함께 물결따라 어디론가 금세 사라져 버리고 아무일이 없었던 것처럼 잔잔한 파도만 일렁이고 있었다.
[蝟島=徐亨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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