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철」 둘러싼 부처이기주의/김창엽 과학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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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부처이기주의」라는 고질적 병폐가 고속철도 사업에서도 예외없이 볼썽사납게 불거져 나오고 있다. 10조원이 넘는 막대한 돈이 투자되는 이 사업의 성사를 위해 관계 부처가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협조는 커녕 아까운 예산을 낭비해가며 「너는 너대로,나는 나대로」 서로 겉돌고 있다.
고속철도 사업의 성패를 가늠한다는,이른바 기술이전 문제를 놓고 최근 과기처와 교통부가 연출하는 행태는 문민정부 들어서도 못벗고 있는 구태의 전형이라 할만 하다.
다알다시피 고속철도는 첨단기술의 복합체로 관련기술 이전시 타 산업으로의 파급효과가 엄청나기 때문에 주무부처인 교통부는 물론 과기처·상공자원부 등도 당연히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협력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 과기처가 1억5천만원의 예산을 책정해 벌이고 있는 「고속철도 기술개발 연구·기획조사사업」을 보면 부처간 협의란 것이 있었는지 조차 무색할 정도다. 나아가 부처이기주의로 정부 사업이 이토록 허술하게 추진돼도 되느냐 하는 한심한 생각까지 든다.
과기처는 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이달 중순까지 구체적인 기술이전 분야 및 방법을 도출해 연말 프랑스측과의 계약에 반영하도록 제시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국내 고속철도기술의 기반 확보를 위한 범부처적 종합계획을 수립해 내년 3월까지 그 방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는 과기처의 이같은 사업추진 계획에 교통부는 시큰둥하다 못해 기가 막히다는 입장이다. 교통부의 한 관계자는 『이미 지난 89∼91년 교통개발연구원·미 벡텔사 등 국내외 7개 업체가 기술이전에 대한 조사를 다 마쳤는데 새삼스럽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과기처를 나무라는 교통부 역시 떳떳한 입장은 못된다. 고속철도의 기술이전 문제는 그 성격상 과기처가 결코 소외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교통부는 지금껏 기술이전 문제와 관련,한번도 과기처와 심도있는 논의를 한 적이 없다.
부처이기주의 때문에 기술이전이 제대로 안돼 준실패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원전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교통부·과기처 관계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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