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동주」의 개혁(유승삼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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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영삼대통령은 기회있을 때마다 「인사가 만사」라는 표현으로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김 대통령의 인사만큼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헷갈리게 해온 것도 없다.
청와대의 비서진은 말하자면 대통령의 분신과 같다고 할 것인데 그 진용이 발표되었을때부터 대다수 사람들의 반응은 「이게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라는 어리둥절함이었다. 이른바 가신·정치적 측근·관료·학자·언론인 등 그 출신이 직책에 따라 각양각색이기만 한채 도무지 그들을 한 줄로 꿸 수 있는 끈을 찾기가 힘들었다.
○불안했더 「짜깁기 인사」
이어 내각의 명단이 발표되자 그런 느낌은 당혹감으로까지 이어졌다. 시대별로는 5공출신·6공출신,심지어 3공때부터 대대로 녹을 누린 사람도 있었다. 또 과거의 분류법대로 보수냐 진보냐를 가려볼때는 보수가 기조인 것 같기는 한데 진보도 더러 끼어있어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업무면에서도 전문성을 중시했는가 하면 아마추어적 감각을 취하기도 해서 역시 뭐가뭔지 종잡기 어려웠다.
당직개편 또한 그랬다. 「당이 개혁을 주도해야 한다」고 주문하면서도 당직엔 과거 인물들을 거의 그대로 온존시켜 놓았다. 그러면서 사무총장엔 자신의 오른팔을 집어넣는 짜깁기를 했다.
마치 외인부대 구성 같기만한 이런 정부와 당의 잡다한 구성을 보면서 더러는 크게 실망하고 돌아앉아버리기도 했지만 당시의 여론은 대체로 지켜보자는 쪽이었다. 그럴수밖에 없었으리라는 그의 취약한 정치적 지지기반에 대한 너그러운 이해와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련한 정치인인 김 대통령의 용병술에 대한 기대도 얼마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적어도 이 시점에서 볼때 결과는 지극히 실망스럽다. 비서진도 일사불란한 것 같지는 않고,행정부는 개혁드라이브 이전에 기본적인 행정수행에서조차 실수와 무능을 드러내기 일쑤다. 당은 또 당대로 개혁을 주도하기는 커녕 스스로 개혁의 대상이 되어 혼비백산한 상태에 있더니 이제는 슬슬 그 일부가 불만세력의 구심체가 되어가는 듯한 느낌마저 없지않다.
○개혁 삐꺽거리는 조짐
그러면 일반 국민의 개혁에 대한 지지도는 어떠한가. 공직자 재산공개와 각 분야에 대한 사정,그리고 군부에 대한 숙정에 대해 국민들이 절대적 지지를 보냈던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 열기는 아직도 채 식지 않아 여전히 전체적으로는 높은 지지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들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이 늘고 있다. 사정작업도 주춤한 상태인데다 경제는 풀리지 않고 갈채를 받아왔던 사정도 이곳 저곳에서 형평성과 공정성이 문제되면서 점차 시큰둥해지고 있는 것이다.
1일 공보처가 발표한 한 설문조사 결과는 개혁을 「훨씬 더 강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54.6%,「조금 더 강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23.3%임을 보여주고 있다. 과연 이 결과를 놓고 단순히 개혁에 대한 지지도가 절대적이라고만 해석할 수 있는 것일까. 「훨씬 더」 「조금 더」라는 응답에는 현재 추진되고 있는 개혁에 아쉬움이나 불만도 함께 섞여있다고 보는 것이 올바른 해석일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정부의 개혁작업은 이른바 기득권 세력의 반발 뿐 아니라 점차 일반 국민으로부터도 불만을 사 협공받는 상황에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개혁의 위기상황 조짐이라 할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고 개혁이 제2의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는 기득권층의 반발과 국민의 방관에 분노하고 섭섭함으로 느끼기에 앞서 과연 현재의 정부구성·당구성이 개혁적인가,아닌가부터 반성해봐야 한다. 내각을 봐도,당을 봐도 개혁에 뜻을 같이하는 동지라기보다는 오월의 동거인 것만 같다. 과연 이러한 인적 구성으로 개혁을 추진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최근 정부는 정부투자기관,산하 기관장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에 착수했다. 정부로서는 이를 인적 청산의 2단계 작업쯤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필요한 작업이지만 결국 문제는 어떤 사람이 그 자리를 메우게 되느냐 하는 것이다. 개혁을 위한 인적 청산이라면 당연히 개혁에 대한 의자가 확고해야 한다. 동시에 전문영역에 대한 능력이 있어야한다. 그 어느 한가지 요건도 갖추지 못한다면 그것은 개혁의 이미지만 훼손할 뿐이다.
○당정 인적 재구성 필요
그러나 실은 정부투자기관이나 산하기관장에 대한 인사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정부와 당에 대한 인사개편이다. 정부와 당의 성격부터 모호하기 때문에 개혁의 의지가 결집되지 못하고 있다. 개혁은 모두를 껴안고 가는 것이란 말은 실은 사탕발림의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언제까지 오와 월이 한배에 타고 항해할 수 있겠는가.
개혁의 색깔과 방향을 분명히 해야 언제 돌아설지 모르는 국민의 감성적 지지를 확고한 정치적 지지로 바꿀 수 있다. 설사 양적으로 축소될지라도 그러한 지지가 필요하다. 지금이야말로 「인사가 만사」임을 되새길 때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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