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칼럼>품앗이와 요즘 부조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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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 전통사회의 공동체적 의식을 가장 잘 나타낸 것 가운데 하나로 품앗이라는 것이 있다.일손이 모자랄 때 서로를 도와주는미풍양속이다.일반적으로는 노동의 교환형식이라고 볼 수 있지만 性別.연령과 관계없이 모든 노동력을 동등하게 평 가했다는 점에서는 구별된다.결국 품앗이의 전통은 노동력의 제공이라는 측면보다 相扶相助정신이라는 측면이 강조되는 것이다.
수천년동안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품앗이 전통은 본래 농촌에서농번기에 모자라는 일손을 서로서로 채워주는 데서 비롯됐지만 이웃에 婚禮나 喪禮같은 큰 일이 생겼을 때도 자신의 일은 제쳐놓고 달려가 돕는 것으로까지 확대됐다.품앗이의 그 같은 相扶相助정신에는 경제적으로 돕는 대신 속된 표현이지만「몸으로 때운다」는 의식이 자리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오늘날에 이르러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돈을 보내는 것도 따지고보면 품앗이 전통에 내포된 상부상조 정신이 복잡한 사회구조 탓에 변형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노동이 돈으로 환산되는 현대사회의 경제논리로 보자면 품앗이 대신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행위에는 瑕疵가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오늘날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보내지는 이른바 扶助봉투들속에 품앗이 전통에 내포된 상부상조 정신이 과연 얼마나 들어있는지 진지하게 따져볼 때가 된 것 같다.물론 그 액수가 많든 적든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몰려드는 돈봉투들이 행 사를 치르는 데 있어 도움을 주리라는 데 대해서는 異見이 있을 수 없고,그런 점에서 비록 변형됐다고는 해도 상부상조 정신이 아직까지는 살아있다고 봐도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그같은 관행이 오래 계속되면서 서로간의 인간관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그것은대개의 사람들이 오늘날의 扶助문화를 자기 중심으로,곧 이기적으로 생각하는 데서 기인한다.扶助라는 말 자체가「 남을 돕는 일」이라면 반대급부를 염두에 둔 扶助는 이미 부조가 아닌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부상조 정신이 깃들여 있어야 할 부조금 때문에 서로간의 인간관계에 금이 가고 파탄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면 차라리 부조의 관행을 없애는 것 이 훨씬 낫지 않겠느냐는얘기도 나올 수 있을법 하다.오늘날의 扶助문화가 안고 있는 문제들은 그리 단순치 않다.
『아무개 喪당했을 때는 문상도 가고 부조도 했는데 우리집 아이 결혼식에는 얼굴도 내비치지 않다니 뻔뻔하기도 하지』『나는 저희집 일 생겼을 때 섭섭하지 않게 했는데 이번 우리집 일에 그 친구 너무 쩨쩨했어』『우리 집안에 일 생겼을 때 는 모른척하더니 청첩장을 보내다니 그 친구 정말 후안무치가 아닌가』『지난번은 지방출장중이어서 문상을 못했더니 이번 혼사에는 청첩장도보내지 않는 것을 보니 그 친구 삐쳐도 단단히 삐친 모양이로군』.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얘기들이다.이렇게나마 불평을할 수 있을만큼 양쪽이 가까운 사이라는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는 것이다.
결혼식이든 喪家든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가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꼭 참석할만큼 가까운 사이인데도 여러가지 사정으로 못가는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참석하지 못하더라도 인편이나 요즘 큰 호응을 얻고 있는「온라인 扶助」등의 방법 으로 돈봉투만보내면 보내는 쪽은 물론 받는 쪽도 일단 할 일은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요즘 풍조다.
품앗이의 전통이 그렇듯 본래 상부상조 정신이란 돕는 사람의 형편에 맞게 하는 것이 도리요,예의였다.힘 세고 일 잘하는 젊은이가 품앗이를 했는데 왜 그 쪽에서는 어린이나 부녀자가 와서품앗이를 하느냐고 항의하거나 불평하는 일이 없었 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품앗이를 못해주는 경우도 물론 마찬가지다.품앗이 그 자체에 반대급부의 의미가 들어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품앗이의 의미 그대로라면 10만원의 부조를 받고 5만원의 부조를 할 수도 있으며,부조를 받았다고 해도 형편에 따라 부조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
부조를 하느냐 못하느냐는 물론그 액수가 많으냐 적으냐 하는 것도 문제될 까닭이 없는 것이다.
***마음함께 해야 참扶助 하지만 오늘날의 扶助문화는 지나치게 타산적으로 변질돼 버렸다.「준 것만큼 받아야 하고,줬으니 받아야 한다」거나「받은 것만큼 줘야 하고,받았으니 줘야 한다」는 생각이 많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 뿌리깊이 박혀 있는 것은 아닌가 서로 진 지하게 따져봐야 한다.
訃音을 접하거나 청첩장을 받았을 때 어떤 방법으로,얼마나 부조를 해야 할까를 생각하기에 앞서 우선 슬퍼하거나 축하하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인지,새삼 요즘의 타산적인 扶助문화가 각박한 세태를 되새기게 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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