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송호근칼럼

황태자를 위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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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코레일 열차가 비무장지대를 통과할 때 일으켰던 작은 진동이 드디어 거대한 폭풍으로 진화했다. 누군가 저 열차를 타고 북상할 것임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상상력의 미학에는 경계가 없으므로, 미국 대통령 부시를 태울 수도, 러시아의 푸틴을 태울 수도 있다. 6자회담의 대표들을 탑승시켜 평양으로 내달려도 좋다. 그러나 그런 상상보다 남북 정상들이 탑승하는 장면이 가장 현실감 있는 시나리오일 터이다. 기차는 만남을 예약한다. 당시 그 열차에 탔던 240여 명의 승객들은 남북 정상들의 만남을 예비한 치어걸이었다.

2000년 6월 15일에 있었던 1차 정상회담은 ‘신중’과 ‘호방’의 만남이었다. 여간해선 표정도 안 바뀌는, 묵직한 경륜의 노(老)정치가 앞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날개 큰 호랑나비처럼 펄럭거렸다. 받을 것 다 받은 뒤였으므로 온갖 애교 다 부려도 밑질 것은 없었다. 그러나 받아낼 목록을 내밀어야 할 지금은 ‘저돌형 정치가’ 노무현 대통령 앞에서 어떻게 변신할까. 마중은커녕 의욕적인 뉴프로젝트를 내놔봐야 ‘잘 놀다 가시라’고 내숭을 떨지도 모른다. ‘저돌’과 ‘음흉’의 만남, 아웃파이터와 인파이터의 조우가 될 듯하다. 씨름에 비유하면 이렇다. 노 대통령이 밭다리 걸기를 시도하면, 김 위원장은 등배지기나 엎어치기로 응수할 것이다. 노 대통령이 혹시 다리걸기에 성공하면 ‘평화협정’ 같은 의외의 성과를 따낼 터이고, 등배지기에 들려 넘어지면 ‘곱빼기로 퍼주기’를 약속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결과에 상관없이 그 만남은 쇠잔하는 정권에 힘을 돋워주는 특제 약인 것만은 틀림없다.

특효가 나타날 것은 또 있다. 28일 아침 북으로 향할 저 기차-아직 이동편이 확정되진 않았지만-가 대선정국에서 ‘황태자 책봉’의 길과 연결돼 있음은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흔히 ‘역사적 사명’으로 포장된 국가프로젝트에 고도의 치밀한 정치 기획이 내장돼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후계자 문제가 혼선을 빚고 있는 대선정국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런 의미에서 남북 정상회담은 여권의 경선 개막을 알리는 선언이다. 왜 하필 지금이냐고 울상 짓는 한나라당도 딱하게 되었다. 그것은 정치 담론을 온통 뒤흔들 만큼 위력적이어서 유권자의 관심도 매스컴의 초점도 몽땅 휩쓸 것이다. 야당에 빼앗겼던 판을 회수하는 와일드카드로 이만 한 것이 없다.

한나라당의 흥행은 이것으로 끝장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참신한 메뉴 없이 자질 시비로 점철된 이명박-박근혜 공방에 슬그머니 염증이 났고, 또 다른 흥행이 개막되기를 고대하던 참이었다. 이런 때 터져 나온 이 ‘시대적 프로젝트’는 8월 19일 야당 대선후보 탄생에 쏟아질 시선을 희석시키고 9월과 10월까지 대선 쟁점의 고삐를 잡아챌 것이다. 그것이 ‘김정일 정국’일지 ‘통일 정국’일지는 모르겠지만, 여권의 최대 약점이자 야당의 최대 호재인 ‘노 정권의 실책’이라는 뇌관을 대선정국에서 제거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말하자면, 남북 정상회담은 대선정국의 담론골격, 즉 프레이밍(framing)을 결정했다. 노 대통령은 유권자의 관심을 ‘실책’으로부터 대북정책과 미래 구도로 이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하여 연결의 종착역, 황태자 책봉에 나설 것이다. 벌써부터 여권주자들이 자신의 공로를 애원하는 것을 보고 노 대통령은 모처럼 느긋해할 것이다. 평양에서 타전될 수많은 뉴스, 정상 간 합의, 후속 사업 등과 관련된 화려한 논의의 후광을 한 몸에 안을 황태자가 누구일까를 짐작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다. 두 정상이 축배를 들 때 축사는 ‘통일을 위하여’겠지만, 나에게는 이렇게도 들린다. ‘황태자를 위하여’.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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