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그여자의4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3.가을 어느 한 때(4) 거실 바닥에 개를 내려놓고 세가 방으로 그냥 들어가는걸 보고서야 은서는 세가 다른 날 같지가 않다는 걸 느낀다.은서는 행주에 물 묻은 손을 닦으면서 방금 자신이 쓰레기통에 구겨 넣은 신문을 잠깐 바라보다가 세가 있는방으로 간다.
세는 두손으로 침대를 짚고 걸터앉아 있다가 은서가 들어오자 그녀를 빤히 쳐다본다.
『왜?』 『….』 세는 은서가 다음에 무슨 말을 해올지를 안다.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그녀는 그렇게 말할 것이다.조금이라도 자신의 기척이 이상하면 그녀는 꼭 그렇게 말해온다.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세는 침대에서 일어섰다.
『아침 먹고 우리 어디 갈까?』 『어디?』 『산은 어때?』 그때야 피식 웃는 은서의 어깨에 세는 가볍게 손을 내려놓았다가거두고는 먼저 방문을 열고 나온다.개는 아까 세가 내려놓은대로그대로 움츠리고 앉아 있다.세는 그 옆으로 다가가서 개를 안는다.그리고는 개의 등을 쓰다듬어 준다.
뒤따라나온 은서는 그제야 안심이 되는듯 세의 품에 안긴 개를잠깐 쳐다보더니 다시 주방으로 간다.
『그러면 김밥 쌀까?』 세는 도마질을 하고 있는 은서의 등을멀거니 쳐다본다.세에게서 아무 대답이 없어 뒤돌아보던 은서는 세가 멀거니 자신을 보고 있자 왜? 하는 표정을 짓는다.
『정말 갈 수 있어?』 『그럼,그쪽이야말로 그냥 해본 소리였어?』 『아니 그런게 아니라….』 세는 뭐라고 하려던 말을 멈춘다.그냥 해본 소리가 아니라,은서가 선뜻 응해오는게 의외다.
그저께 그녀가 말한대로라면 오늘내일 그녀는 원고 쓰느라 꼼짝없이 방안에 있어야 했으므로.
『슈퍼에 가서 오이하고 단무지 좀 사와… 어제쯤 생각했으면 김밥 속을 많이 넣는건데… 그냥 그 두가지하고 쇠고기 볶아서 좀 넣는다? 고기는 갈아다 놓은거 냉동실에 있거든.』 『안가도돼… 원고 써야잖아.』 『빨리 사와 늦장부리다간 차가 밀려서 아무데도 못갈걸.』 은서는 냉장고 위에 얹어두었던 지갑을 세에게 주며 등을 떼민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