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남기자의영화?영화] 충무로가 ‘분단’ 다루는 방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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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만남의 광장’(15일 개봉·사진)은 참으로 어수룩한 상황에서 어수룩한 사람들이 벌이는 코미디입니다. 때는 1980년대. 교사의 꿈을 품고 서울에 올라온 주인공 영탄(임창정)은 어이없게도 ‘삼청교육대’에 ‘눈치입학’ 합니다.

서울역 앞에서 가방을 도둑맞고 경찰서에 갔다가, 저쪽에 꿇어앉은 사람들은 삼청교육대에 들어갈 거란 말을 듣고 은근슬쩍 끼어듭니다. 나중에 제5공화국의 인권탄압 현장으로 밝혀지는 삼청교육대를 삼청 ‘교육대’로 오해한 거죠. 이동 중에 실수로 트럭에서 떨어져 가까운 산간 마을에 들어서는데, 마을사람 역시 ‘교육대 다니다 왔다’는 그를 자원해서 온 신임 교사로 오해합니다.

 사실 더 어수룩한 건 도입부에 벌어지는 30년쯤 전의 상황이죠. 외국 군인들이 철조망 세우는 걸 보고 마을사람들이 나서 도와주는데, 다 세우고 나니까 양쪽으로 나뉜 채 서로 왕래할 수 없다는 황당한 얘기를 듣습니다. 이 철조망, 알고 보니 휴전선입니다. 삽시간에 이산가족이 된 사람들은 윗마을(북)과 아랫마을(남)사이에 땅굴을 뚫어 수십 년간 남몰래 왕래하며 살아옵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영탄은 오해를 시작합니다. 아랫마을 어른인 이장(임현식)과 윗마을 처녀(박진희)가 불륜관계라고 여기고, 동네사람들에게 이를 고발하려는 것이지요. 이 코미디에는 의도하지 않은 어수룩함, 즉 이야기의 연결고리가 매끈하지 않은 지점도 더러 눈에 띕니다만, 꽤 흥미로운 대목도 많습니다.

 남북관계라는 묵직한 현실을 우리 대중영화가 어떻게 다뤄왔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쉬리’(1998)와 ‘공동경비구역 JSA’(2000)의 비극적인 드라마를 거쳐, 이산가족을 다룬 ‘간 큰 가족’(2005년)의 코미디와 ‘웰컴투 동막골’(2005년)의 동화 같은 이상향까지, 분단의 비극을 소화하는 방식에 점점 여유가 생긴 듯합니다.

 시대변화의 힘도 크지요. 한때는 반공영화가 아니고는 금기에 가까운 소재였으니까요. 더구나 분단은 현재진행형의 비극인 만큼 오락영화에 흔한 해피엔딩으로 결말 짓기가 쉽지 않습니다. 코미디 ‘간 큰 가족’은 분단의 아픔에 눈시울을 적시는 것으로, ‘웰컴투 동막골’은 남북한과 미군병사가 희생을 자처하는 것으로 끝나지요.

 ‘만남의 광장’은 결말 역시 코미디라는 점이 눈에 띕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못하지만 이 사람들, 어수룩하기만 한 게 아니더라고요. 분단 이후 수십 년 세월을 견디면서 영악한 생존본능이 몸에 배었더군요. 하루아침에 이산가족이 된 말도 안 되는 비극이 절묘하게 코미디로 전환되는 맛이 있습니다.

 사족을 덧붙이면, 진짜 신임 교사(류승범)의 나 홀로 연기가 꽤 웃깁니다. 생리현상을 해결하러 숲 속에 들어갔다가 그만 지뢰를 밟습니다. 생사의 기로에서 속된 말로 ‘죽을 ×을’ 싸며 버티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황당한 비극과 희극은 종이 한 장 차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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