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광고서 영어 추방령-업계 반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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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인도네시아가 최근 영어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나섰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국민들 사이에 갈수록 늘어나는 영어사용을 막고 인도네시아어를 보호하기 위해 최근 모든 광고에서 영어사용을 금지시켰다.이를 위반한 업체는 벌금은 물론 징역형까지 받게된다. 이같은 조치는 인도네시아에서 영어가 젊은층을 중심으로「신세대 언어」로 널리 각광받는 가운데 내려졌다.이곳 젊은이들은기성세대와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모국어를 버리고 영어를 애용하고 있다.또 이들을 주요 마키팅 대상으로 삼고 있 는 방송사.광고제작사들은 신세대 바람에 편승,틈만 나면 프로그램.광고에 영어문구를 삽입해 영어바람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실정이다.
이 때문에 인도네시아 교육문화부 산하 언어개발연구소의 나프론하심 소장은『젊은이들은 자신들이 「모던」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영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이 과정에서 모국어를 잊어버리고 있다』고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50년대부터 외래어 사용에 대한 규제방안을 연구해온 하심소장은 이같은 언어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절제하게 영어문구를 사용하고 있는 광고업체들과 언론매체들의 협조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들의 의견은 다르다.언론계에서는 정부의 영어금지조치를 일단 수용하고 있으나 이것이 언론 및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광고업계도 이같은 조치가 정부의 지나친 간섭이라는 의견이다.
한 광고회사 간부는『시장조사결과 많은 젊은이들이 영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하고『우리는 단지 이들의 언어사용 경향을 반영할 뿐』이라며 광고에서의 영어사용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강변한다.
이같이 영어가 인도네시아 국민들 사이에 비교적 쉽게 파급될 수 있는 데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다.
먼저 표준어인「바하사 인도네시아」의 역사가 짧다는 점이다.1만여개의 섬들에 2백50여종의 방언들이 혼용되고 있는 인도네시아.이곳에 정립된지 80년에 불과한 바하사 인도네시아는 아직 표준어로서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인도네시아인들은 3백년이상 지속된 네덜란드의 식민통치로 외국어에 대한 거부감이 약한 편이다.
인도네시아어는 식민치하에서 민족의식의 구심점 역할을 했으며 독립투쟁의 확산에 큰몫을 담당했다.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푸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인도네시아의 언어학자인 로시한 안와는 정부의 강압적인 조치는 피상적인 해결책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그는 인도네시아 민족의 주체성 확립만이 인도네시아어를 살리는 길이라고 말한다.
〈李碩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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