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실명제허점 칼날 공세(국감 추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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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보완시기 늦어 불신만 가중”/중기지원·세제개선등 촉구/정부 “큰 부작용 아직없다” 낙관론 일관
올 국정감사는 금융실명제를 둘러싼 공방으로 벽두부터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국감 첫날인 4일 재무위 뿐 아니라 경과·상공자원·문화체육 공보위에서까지 실명제가 도마위에 올려져 정부·여야의원간에 팽팽한 설전이 벌어졌다.
여야의원들 가운데는 실명제를 다각도로 비판·조명하기 위해 여론조사를 하거나 현행 세율체계의 허점을 꼼꼼히 정리해 자료로 제시하는 등 충실하게 준비해온 이들이 적지 않았다. 또 막연한 추궁 대신 각종 지표를 이용해 실물경제 현실을 전달하고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는 이들이 많아 질의내용이 과거보다 깊이가 있었다.
○답변은 원론수준
그러나 정부측의 답변은 시간제약 때문이기도 하지만 거의 원론적인 수준에 머물러 의원들이 공들인 감사는 싱겁게 종료된 인상을 남겼다.
우선 실명제 주무부처인 재무부를 감사한 재무위에서는 실명제와 관련한 쟁점이 총망라됐다. 28명의 의원 가운데 22명이 질의에 나서 정부정책의 신뢰성,실명제 후속보완 조치,정부 세제개편안,통화증발과 물가불안,중소기업 지원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따졌다.
이와함께 민주당의원들은 특히 긴급명령의 대체입법 전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의원들은 각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정부 정책의 혼란과 실기를 지적했다. 손학규의원(민자)은 『실명제 실시이후 정책당국자의 태도가 변화무쌍하다』며 3천만원이상 인출자에 대한 국세청 통보,실명전환 자금출처조사 등 중요사안이 1,2차 보완책 마련때마다 바뀌었음을 상기시켰다. 손 의원은 『이 때문에 정책의 적부문제를 떠나 정책 그 자체가 신뢰성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이밖에도 『땜질식·조변석개식 정책으로 신뢰를 잃고 있다』(서청원의원·민자) 『국민경제에 미친 나쁜 영향을 시정되지 못한채 국민과 기업의 불신만 사고 있는 실정』(장내식의원·민주)이라는 등의 질책이 쏟아졌다.
의원들의 현실인식은 여전히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 문제로 이어졌다. 금진호·최돈웅(민주),임춘원(무소속)의원 등은 『중기에 대한 긴급운전자금 지원은 총배정금액의 50%선에 머물고 있다』는 등의 각종 통계를 제시하면서 『중기지원 정책은 전시행정에 불과하다』고 추궁했다.
이상득의원(민자)은 현행 세법과 정부의 세제개편안 가운데 세액감면제도 등을 약간만 개선하면 중기에 큰 혜택이 돌아간다며 몇가지 대안을 내놓기도 했다.
○문화계도 큰 타격
중기문제는 상공자원위·문화체육공보위 등에서도 거론됐다. 상공위의 박정훈의원(민주)은 『실명제로 중소제조·유통업체들이 큰 타격을 받았으나 상공자원부는 재무부의 지원책만 바라볼뿐 독자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꾸짓었다. 문화체육 공보위의 이순재의원(민자)은 문화체육부 감사에서 『영세성이 강한 영화계·미술계에서는 실명제이후 운영자금난으로 인해 제작중단·전시취소 등의 사태가 나타나고 있다』고 실정을 알렸다.
여야 의원들은 정부의 세제개편안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이었다. 나오연·정필근·오장섭(이상 민자),장재식·박태영(이상 민주)의원 등은 『실명제로 과세포착률이 높아지고 경제환경도 크게 바뀌게 됐으나 정부 세제개편안은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각종 세율의 대폭 인하를 주장했다.
경과위의 김해석의원(민자)도 경제기획원 감사에서 『실명제로 경제여건이 바뀐만큼 신경제계획 수정을 검토할만 하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민주당의원들은 이같은 문제점들을 적시하면서 『결국 긴급명령을 법으로 바꿔야 실명제가 체계적으로 정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원길의원은 서울시의 봉급생활자 1천2백명과 수도권지역 영세·중소사업체 6백여곳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대다수가 대체입법을 지지하고 있다며 조사내용을 자료로 제시하기도 했다.
○세율인하 안한다
여야의원들은 이처럼 다각도로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정부측의 답변은 간단했다. 홍재형 재무장관은 『실명전환 절차가 현재까지 큰 부작용없이 진행되고 있다』며 낙관론으로 일관했다. 그는 따라서 대체입법·세율 추가 인하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정부정책 시의성·신뢰성과 관련한 의원들의 지적과 중기지원·세제개선에 대한 의원들의 대안 등은 정부측이 음미할만한 것이었다는 평가다.<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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