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자장관에게 듣는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성과는 안드러나고 표 안나게 바쁘기만…/요란한 명분 떠나 치밀하게 실익 다질때
『표도 안나게 바쁜 나날이었습니다. 이 자리에 앉은지 7개월째 접어들었다는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모두들 정무 제2장관실을 「여성문제 전담기구」로 여겨 참으로 많은 것을 기대하는데 비해 정작 집행이나 해결은 각 담당부처에서 하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가 없어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여성문제의 모든 것」을 다루면서도 정책집행권이 없는 「여성계의 대모」가 느끼는 한계를 이렇게 털어놓는 권영자장관. 여성들의 지위향상을 위한 정책추진이나 법개정과 관련된 각 부처를 찾아다니며 여성들의 입장을 대변하다 보니 다른 장관들이 아예 「여성부 장관」이라 부른다며 웃는다.
사실상 산적한 여성문제들을 제대로 풀어가려면 조정기능 밖에 없는 정무 제2장관실을 집행·조정 기능을 두루 갖춘 여성부 내지 여성처로 확대·개편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그러나 권 장관은 『굳이 여성문제를 따로 떼어내 다루는 것이 여성들을 위해 더 유리한지부터 차분히 따져봐야 할 일』이라며 신중론의 피력. 『여성들의 특수한 문제가 우리 사회의 보편적 문제로 바뀔 때까지 어떤 부분을 어떻게 다뤄야할지 연구·검토중』이라며 남녀를 분리하지 않으면서도 힘과 효율성을 늘리는 방안에 대한 집착을 드러낸다. 예컨대 여성문제 해결에 필요한 기관이라든가 위원회 및 산하단체들을 두고 이를 다각도로 지원하는 등 현재의 정무 제2장관실 입장에서는 전혀 불가능한 일들을 할 수 있도록 그 법적 지위와 권한을 늘리는 방법도 재고해봄직하다는 것.
그간 목소리도 높아지고 조직도 상당히 강화된 여성계 역시 이제는 외형보다는 치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실현가능한 대안들을 제시하는데 힘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명제 발표이후 여성들의 상속세나 증여세가 새로운 논란을 빚고 있는 것도 가족법만 어렵사리 개정해 놓고는 세법을 그에 맞게 개정하지 못한 전문성·치밀성의 부족탓이라는 것이다. 『여성들이 실익을 찾으려면 항상 총론으로 그치지 말고 각론까지 꼼꼼히 챙기는 후속조치를 해야 할 것』이라는 그의 이야기는 「외유내강형」으로 소문난 권 장관의 업무추진 방식을 새삼엿보게 한다.
취임이래 권 장관은 여성계뿐 아니라 여성들이 있는 각양각색의 현장들을 수시로 찾아다니며 그 활동영역을 크게 넓혀 남다른 의욕을 보여왔다. 여천·구로공단 사용자들과 남녀고용 평등을 정착시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간담회를 갖는가 하면,정부에 각종 위원회가 구성될 때마다 여성위원이 포함돼 있는지 등을 확인해 여성위원이 아예 빠져있거나 종전보다 줄어드는 경우는 여성위원을 포함시켜 줄 것을 당부하는 등 그야말로 동분서주.
「소리없이 표 안나게 바쁘다」는 자신의 심경을 『숙제를 마치지 못한 학생처럼 늘 미진한 기분』이라고 표현한다. 각 부처가 다루는 여성문제들 가운데 자신이 마땅히 점검·조정했어야 하는 문제를 행여 빠뜨리지는 않았는지,그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누구를 어떤 방법으로 설득해야 할지 등의 생각이 꼬리를 무는통에 취임이래 하루 다섯시간쯤 자기도 어려울 만큼 긴장속에서 지낸다고.
『이따금 한가한 주말 오후 편안한 옷차림으로 외손녀와 노는 것이야말로 더할 나위없는 즐거움이자 최상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라며 활짝 웃는다.<경>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