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공관 군살빼기/청와대 감사의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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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인사숨통” 악용된 주재관제 대수술/무관 의전서열 낮춰 지휘체계 개선
청와대가 23일 ▲주재관의 축소 ▲무관의 서열 조정 ▲안기부의 해외정보비 감사권 폐지 등을 골자로 하는 「재외공관 운영개선방안」을 마련한 것은 부처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외교업무의 효율화를 꾀하자는 뜻이 담겨있다.
특히 청와대측이 그동안 큰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재외공관의 방만한 운영,지휘체계의 문란,일부 무기력하고 소신없는 외교관 등에 대해 시정을 촉구한 것은 현재대로 놓아두었다간 재외공관이 통상외교 등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에 따른 것으로 볼수 있다.
재외공관의 운영과 지휘체계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 것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부처간 이기주의 때문에 누구도 메스를 가할 수 없었으며 주무부서인 외무부도 『누가 나서 해결해 주지 않나』하고 눈치를 보면서 자신들의 문제를 과감히 고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온 측면도 없지 않다.
우선 이번 개선방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재관 제도는 지난 80년 국보위 이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정비하지 않았고 오히려 인사숨통을 트는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
물론 주재관 숫자를 무조건 줄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경제외교의 중요성이 날로 강조되는 상황에서 전문성을 갖춘 재무관이나 상무관을 많이 내보내는 것이 국익에 보탬이 될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처럼 외교활동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주재관을 파견한다는 당초의 취지와는 달리 각 부처가 인사적체해소 등 편의에 따라 주재관을 내보냄에 따라 재외공관의 방만한 운영을 가져왔다는 것이 외무부의 분석이자 청와대의 감사결과이기도 하다.
이번 감사결과 업무의 효율성과 무관하게 주재관을 복수로 파견한 부처가 드러나고 주재사유가 상실됐음에도 인사적체 해소차원에서 주재관을 그대로 두는 경우가 전체 4백여명의 주재관중 20%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어떤 공관에는 중동건설붐때 건설부에서 파견한 건설관을 지금도 그대로 두고 있는 것으로 감사결과 나타났다.
정부가 국방무 무관 10명과 안기부 주재관 20명을 각각 줄이기도 한 것은 탈냉전 분위기에서 남북한이 소모적인 대결외교를 펄 필요성이 줄어들었다는 판단에서다.
홍순영 외무부차관은 『오늘날과 같은 전문화 시대에는 현재의 주재관들이 대개 필요하다. 그러나 인사적체의 해소수단이 아니라 실제로 일할 수 있는 직급이 낮은 사람을 파견해야 한다. 현재 주재관의 직급이 너무 높은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결국 주재관의 직급을 부이사관이나 서기관으로 낮추기로 한 것은 이같은 외무부 의견을 많이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무관들의 의전서열을 한 단계 낮취기로 한 것도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과거 군사정권시절 무관들의 의전서열을 1∼2단계 높임으로써 다른 부처 주재원들과의 형평성은 물론 지휘체계에도 많은 혼란이 있었다.
이번 원상복위로 무관의 직급은 참사관보다 서열이 낮아지게 되었다.
이와함께 그간 외무부와 안기부간의 마찰요인이 돼왔던 외무부 정보비에 대한 안기부의 감사권을 폐지한 것도 잡음의 소지를 없애는 계기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안기부는 보안 및 정보비 감사를 무기로 공관장의 통제에 제대로 따르지 않거나 무언의 압력을 행사한 사례가 간혹 있어왔기 때문이다.
결국 이같은 제도 정비를 통해 외무부는 자신들이 바라던 「공관장의 권능강화」목표는 이룬 셈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청와대의 지적처럼 예산의 낭비요인을 제거하고,특히 비합리적인 공관운영과 일부 외교관들의 호화생활을 지양하는 등 내부 정지작업을 서두르는 일이다.
정부는 외교관들에게 외교활동상 품위의 중요성을 고려해 중진국수준에 걸맞는 대우를 해주고 있으나 주택비 등이 과다하게 책정되어 있고 일부의 분에 넘치는 호화생활로 현지교민과 지·상사원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온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 해외공관의 국유화(공관이나 관저의 임대가 아닌 매입)도 현수준(30%)에서 동결하라는 청와대의 지시는 외무부가 국가경제현실에 둔감한채 확보된 예산집행을 고집해온 관행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박의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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