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그여자의4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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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3.가을 다음해 구월(6) 방송국 안 주차장이 꽉 차 있다.
은서는 하는 수 없이 방송국 밖 광장에 차를 주차시켰다.광장도차로 가득차 있다.날마다 늘어나는게 자동차다.시계를 들여다보며부지런히 방송국 정문을 향해 걸어가던 그녀는 낯익은 노 랫소리에 소리나는 쪽을 돌아다 보았다.
작년 가을이 지나고 겨울부터 보이지 않던 노래하는 노인이 방송국 서문 노란 차단기 앞에 마이크를 잡고 서 있다.딩동댕 지난 여름…노인이 부르는 노래는 노인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은서는 청명한 가을 햇살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노인쪽을 한참 쳐다보다 다시 걸었다.바닷가에서 우연히 만났던 여인.노인이부르는 노래가 노인의 목소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도 어느덧 노인의 노래를 따라하고 있는 자신이 우스워 은서는한번 더 노인쪽을 쳐다본다….지 난 겨울 봄 여름…그는 어디에있다가 다시 나타난 걸까? 별생각을 다하는군,싶은데도 은서는 자신의 또각거리는 구두굽 소리가 노인의 노랫소리를 밟는 것만 같아 조용히 걸으려 애쓰며 빨리 걸었다.그러다가 걸음을 멈춰버린다.지나가버린 어 느 봄날 방송국 3층 커피숍 유리창으로 노래하는 노인을 바라보고 있던 자신의 얼굴이 앨범 속의 사진처럼떠오른다.그때의 외로웠던 마음도 함께.은서는 마치 그 마음을 깨버리기나 하려는듯 정문을 향해 뛰어갔다.그런데도 딩동댕 말이나 해 볼걸 또 만나자고…하는 노인의 불협화음이 그대로 귓가로스민다.은서가 어깨에 맨 가방을 추스르며 방송국 안으로 들어갈때 노인의 노래는 구성진 옛노래로 바뀐다.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은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큐멘터리 제작실이있는 5층 단추를 누르고는 엘리베이터 벽에 어깨를 기댔다.그 다음 가사가? 은서는 피식 웃었다.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라…던가.
황PD를 만나기로한 시간이 1시인데 10분이나 늦었군,그에게원고를 넘기고 6층의 라디오국에 가서 김PD를 만나고,다시 더빙실에 가고…이런 저런 생각속으로 좀전에 자신을 배웅하며 차창밖에 서있던 세의 얼굴이 끼어든다.일좀 줄일수 없느냐고 말하는세의 얼굴을 은서는 한번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다.그 말을 할 때마다 세의 얼굴에 번지는 근심을 맞바라볼 자신이 없어서다.엘리베이터가 멎자 은서는 세의 얼굴을 지워버리며 어깨의 가방을 다시 추스르면서 빠른 걸음■ 로 제작실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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