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맛 씁쓸한 야당의 “돌변”(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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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자당이 재산공개로 말썽을 빚은 의원들의 징계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지난 15일 민주당은 민자당을 향해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인다고 비난했다. 민자당이 문제의원 10여명에 대해 출당·당원권정지·경고 등을 검토하고 있을때 민주당은 『고작 그 정도의 경징계로 넘어가려 하느냐』고 호통쳤다.
축재과정에 부도덕성이 제기된 의원들은 의원사퇴 등 보다 강력한 처벌로 「일벌백형」해야 한다고 목청높였던 것이다.
그러던 민주당이 이틀만에 1백80도로 말을 바꾸었다. 민주당은 17일의 최고위원회에서 민자당의 문제의원 징계가 「초법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공직자윤리법과 국회윤리위원회가 있는데 왜 당이 나서서 소속 의원들을 벌주느냐는 얘기다.
엄벌조치를 하지 않느다고 나무라는게 아니고 이번에는 거꾸로 당이 벌주는 것 자체를 문제삼고 나온 것이다.
최고위원회의는 더 나아가 『민자당의 초법적 징계조처가 김영삼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는데 나쁘게 이용되고 있다』고 했다.
민자당은 왜 하루아침에 이처럼 1백80도 다른 쪽으로 가는 것일까. 민주당이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 정확한 내막은 알 수없다. 다만 추측과 분석을 해볼 뿐이다.
돌변의 시점이 지적되고 있다.
「강건너 불구경」이었던 민자당의 불이 꺼지고 그 불이 서서히 민주당쪽으로 옮겨붙을 조짐을 보이자 돌변했다는 것이다. 남의 불은 재미있게 구경할 수 있지만 자기집일 경우는 구경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소속의원들중 지난 4월 재산공개로 드러났듯이 무연고지 등 전국에 다량의 부동산을 보유한 의원들이 적지 않은데다 이런 저런 비도덕적·위법적 재산축재를 한 의원들이 민주당에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자당에 이어 민주당에도 의혹이 있는 의원들에 대한 당의 징계문제가 제기될 경우 당지도부에 쏠릴 부담이 적지 않다.
윤리위의 실사에 따라 법적으로 처리할 때는 적어도 지도부에 지워질 이같은 부담은 피할 수 있다는 얄팍한 계산이다.
법과 정의가 다른 사람에게는 엄격히 시행되어야 하지만 자신에게 적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우리사회의 고질병중 하나다. 2중잣대의 적용이다. 민주당이 이 고질병이 계속 감염된 상태에 있는한 집권 대체세력으로 국민에게 받아들여지기는 힘들 것이 틀림없다.<박영수 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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