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도 기준도 없는 민자징계/이상일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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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6일 겨우 재산공개 뒤처리 방침을 정한 민자당은 이번에도 무원칙을 한껏 과시했다. 이른바 「문제의원」 징계와 관련해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것은 당이 원칙없이 덤벼들었기 때문이다.
우선 민자당은 재산공개 직후부터 몇몇 소속의원들에 대한 문제가 속속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도부의 손발이 안맞아 어쩔줄 몰라하다 청와대의 질책을 받고서야 부랴부랴 징계작업에 착수했다.
당은 그러나 의원들의 정치적 운명을 좌우할 중대사안을 논의하면서도 치밀하고도 신중한 모습은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장계를 하려면 먼저 징계의 객관적 원칙을 제시하고 누가 왜 문제가 되는지를 철저히 조사해야 하며,적어도 징계방침을 확정할 때까지는 보안을 유지헤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도 당은 어느것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징계대상 선정과 관련,당측은 ▲1,2차 공개재산 차액 과다 ▲재산은닉·축소 ▲공직이용 축재·투기지역 부동산 과다 보유 등을 기준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과연 각각의 기준에 해당되는 사람들을 정밀하게 조사했는지에 의문이다.
1차때와 비교해 물건을 빠뜨리지 않았는데도 단순히 차액이 많다는 이유로 징계대상에 올리고,분명히 문제가 있는 의원인데도 지역적 고려와 항의정도에 따라 처벌을 가볍게 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등의 주먹구구식 징계가 이뤄졌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때문이다.
칼자루를 쥔 당사자들의 경솔함도 잡음과 소란을 일으키는데 단단히 한몫을 했다. 적어도 징계받을 사람들을 고르는 동안만은 진중해야할 당직자들이 누구누구가 어떤 벌을 받을 것인지 곳곳에 흘리는 언행을 보였다. 어떤 고위당직자는 또 『정치인은 돈많은 것 그 자체가 문제가 된다. 돈이 많으면 사업이나 할 일이지 정치에 뛰어들어서는 안된다』고 말해 징계의 형평성에 대한 의혹을 더욱 부풀렸다.
이런 매끄럽지 못한 일처리 결과가 15일 당무회의에서 터져나왔다. 어떤 의원은 책상을 치며 『도대체 기준이 뭐냐』고 대들었고,많은 의원들이 심정적으로 동조했다고 한다.
국민적 심판을 받아 마땅한 혐의가 있는 의원들을 징계하는 것은 국민정서에도 맞고 정의에도 부합하는 일임에도 서투른 일처리로 그 정당성이 훼손되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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