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사랑 받는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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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전철 안에서 어린 손녀와 할아버지를 보았다.자리가 나자 손녀는 할아버지를 아랑곳하지 않고 욕심맞게 혼자 앉아버렸다.조금 있다가 손녀는 할아버지 생각이 났는지 일어섰다.멋적게 씩 웃으면서 할아버지의 손을 잡아끄는 손녀의 표정이 재미 있었다.할아버지가 흐뭇해하며 자리에 앉고 그 무릎 위로 손녀가 앉았다.
자기만을 생각하다가 곧 할아버지의 존재를 깨닫는 손녀의 모습이 왠지 가슴에 와닿았다.사랑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본질적으로자신보다는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또 그에 대한 세속적인 대가를바라지 않는 것.궁극에는 자신의 이기를 깨닫고 스스로를 극복해갈 수 있는 계기를 주는 것.그래서 사랑이란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영향의 관계라는 그런 것 말이다.
그러면서 나는『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그림책을 떠올렸다.내가 대학생 시절이던 70년대 중후반에 처음 소개되었던 이 책은그림책이면서도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감동을 주었던 기억을 나는갖고 있다.아직도 이 책은 대중적인 인기를 누 리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이 준 감동을 인정하면서도 여기서 제시되는사랑에 대해선 조금 불만을 품고 있다.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것을 아낌없이 소년에게 다 주었던 나무의 사랑이 너무도 일방적이며,「자기반성」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생 각 때문이다.
사랑은 상호 영향의 관계라는 점에서 더 크고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나무가 아무런 자기반성도 하지 못하는 소년에게 편히 쉴의자를 제공한 사실에 행복해하는 결론이 너무 상투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책이「출판미술」의 한 보기라는 점에서,그리고 아직도 영향력을 갖는 책이라는 점에서 나는 다음 페이지가 더 그려져야 한다고 믿는다.
이를테면 나무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은 소년이 이기의 모습을 극복하는 견론이 덧붙여져야 한다는 것이다.그래서 다음 세대가 사랑을 받고,또 사랑을 주게될 나무를 새롭게 심는 모습이 그려졌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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