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사법부>中.누적된 불신에 떨어진 권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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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재산공개 파문으로 金德柱대법원장이 사퇴한데 이어 물의를 빚고있는 일부 법관들의 추가퇴진이 예상됨에 따라 법원내에서는 사법부의 권위추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법대에 앉아보면 재판당사자나 방청객들의 눈빛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이같은 불신분위기 속에서는 원만한 재판진행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걱정하며『사법부를 더이상 여론재판으로 몰아붙이지 말아달라』고 주 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법부의 권위는 권력에 영합하고 진실에 등돌린 일부 법관들에 의해 이미 크게 훼손된 상태라는 지적과 함께 이번사태를 계기로 오히려 오욕으로 얼룩졌던 사법부의 면모를 완전히일신해야 한다는게 국민의 바람이다.
사법부가 현재 안고있는 가장 큰 문제는「권력의 시녀」혹은「司法部」라는 비판적인 표현이 의미하듯 독립적인 권위의 상실.독재권력이 정권안보 차원에서 자행한 월권과 통제가 큰 요인이기도 했지만 그와 더불어 지금까지 법원도 독자적인 판 단을 유보한채소극적으로 권력의 눈치를 살피는데 익숙해왔던게 사실이다.
긴급 조치법.국가보안법.집시법등 정상적인 입법과정을 거치지 않고 국가보위 입법회의등 임시기구들이 자의적으로 만든 법률이 과거 권위주의 통치시절 인권을 무시한채 무차별적으로 적용돼 왔지만 법원이 이에 제동을 건 판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소위 시국사건은 물증보다 진술증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고문등 수사기관의 불법행위에 의해 진술이 조작되는 경우가 있었는데도 법원은 권력의 뜻에 따라 청구되는대로 구속영장을 발부했으며 검찰의 공소장을 자구 한자 고치지 않고 판결문에 인용하기도했다.최근 법정 구속판결이 내려짐으로써 불법성이 인정된 金槿泰씨 고문사건의 경우도 당시 법원은 고문사실에 관한 증거보전신청까지 기각했을 정도였다.
81년 國風행사 반대 유인물을 뿌린 혐의로 구속돼 1심에서 징역1년을 받은뒤 2심에서 반성문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1심형량의 3배인 징역3년이 선고됐던 禹元植씨(36.의원보좌관)의경험은 권력에 휘둘려졌던 사법부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禹씨는『시국 사범들의 형량이 당시 갑자기 높아졌는데,이때가2학기 들어서면서 학내 시위가 격화되는 시점임을 감안할때 정권이 법원에 압력을 가해 군대식의 시범케이스 양형을 한 것같다』며『선고가 내려지는 순간 법원의 공정성에 걸었던 순진한 기대는참담하게 무너졌다』고 회고했다.
최근들어 권력의 압력은 거의 사라졌지만 또 다른 병폐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국사범들에 대해서는「법대로」단죄를 하던 법원이 낙동강 페놀유출사건을 일으킨 斗山전자직원과 관련공무원 전원을 1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했다든지,6共 최대의 권력형 비리인「水西사건」으로기소된 鄭泰守회장등 6명의 피고인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법원이 금력을 배경으로 한 범죄에 관대함을 보인 결과 나타난「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사법부 불신까지 나타났다.
일반 서민들이 법관들의 재산규모와 축재과정에 의혹을 보내는 이유도 법관자신들이 청렴 의무를 팽개치고 축재에 골몰할때 법은항상 보편적 정의에서 벗어나 가진자의 논리를 대변할 수 밖에 없다는 우려 때문이다.
세상은 급변하고 있는데 종전 판례들만 뒤적이고 앉아있는 소극적 자세도 하루빨리 바뀌어야 할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경제.사회적 환경의 변화로 법과 현실과의 괴리가 심화되고 있는데도 변화로 인한 갈등을 해소하고 조정하는 법을 새로 만드는「사법적극주의」자세가 결여됐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법부의 문제들은 갈수록 관료화되고 있을뿐 아니라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할 수 없는 인사제도의 결함때문에 발생한다는분석도 귀담아 들을만하다.
올 6월 서울민사지법 단독판사들의 의견서에서도 지적됐듯이 정년까지 마음놓고 판결할 수 있는「법관의 독립」이 정착되지 않는한「사법부의 독립」역시 요원하다는 것이다.
73년 국가배상법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린 대법관 9명과 80년 金載圭피고인 재판때 소수의견을 냈던 6명의 대법관이 외부의압력으로 법복을 벗은 일이라든지,85년 시국사건에 무죄판결을 내린 朴時煥판사등 2명을 지방으로 좌천시킨 사례 들은 법관들에『인사권자에게 밉보이면 판사생활은 끝장』이라는 굴레로 작용했다. 법관 인사권이 어느 한사람에게 독점돼 좌우되는한 외부의 압력과 통제는 언제든지 또 다른 형태로 나타날게 틀림없으며,따라서 현재 추진되고 있는 인사제도개편작업도 전향적이고 과감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鄭鐵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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