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소리 듣고 경영쇄신-기업마다 하의상달 통로 넓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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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수출입은행 金榮彬행장은 매일 아침 출근하면 책상에 놓인 개인용 컴퓨터에「PC핫라인」의 화면을 띄워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PC핫라인은 이 은행 직원이면 누구나 은행장의 PC(개인용컴퓨터)에 곧바로 자신의 생각이나 건의를 입력시킬수 있는,이른바 현대판 신문고제도다.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불평불만들이 한달에 10건꼴로 접수되고 있는데 金행장은 관련부서 도움을 받아 직접 답변서를 작성,社報에 싣고있다.
대우전자도 7월부터 사내임직원들과 협력업체의 제언을 곧바로 듣기위해 사장실에 직통 팩시밀리를 설치,운영하고 있는데 사내공모를 통해 이름을 아예 「신문고 팩시밀리」로 붙였다.
이처럼 최근 최고경영자들이 일선사원들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애로를 직접 챙기는 회사들이 늘고있고 경영자들과 현장사원들이 몸으로 부대끼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띄고있다.대우자동차 金泰球사장은 지난 4월 스패너를 들고 생산직 사원들과 함께 야간작업을 하며 하룻밤동안 현장의 애로를 몸으로 경험했으며,럭키금성 具滋暻회장은 한달에 한번 이상 현장사원들과 일문일답식 대화시간을 통해 고객위주의 경영을 전파하고 있다.
삼성그룹이 「質의 경영」도입과 함께 중역들에게 週4일 이상 현장에서 출퇴근하도록 한 것도 현장의 소리를 여과없이 들어보자는 뜻에서 마찬가지다.
최근엔 생산부서와의 벽을 허물기 위해 기획.인사.총무등 주요관리부서를 공장내로 옮기는 기업들도 생겨나 현대정유.동국제강.
삼성시계.동부제강.우성산업등이 올들어 새로이 지방본사 시대를 열었다. 이런 현장의 소리 듣기운동은 일선사원들의 신선한 사고를 경영에 반영,굳어져가는 기업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고 심각한 인사적체로 쌓여가는 평사원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려보자는 것이다.
최근 소비자의 수요변화를 경영의 최우선순위에 놓자는 고객 만족경영의 확산은 上意下達의 폭을 넓히고 있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지난 91년부터 청년중역제(삼성그룹).프레시 보드(럭키금성).모의 임원회의(대우).청년이사회(효성)등 이름은 다르지만 여론수렴의 통로를 열어놓고 있다.이들 모임에는사장들이 직접 참석해 묵묵히 듣기만 하는가하면 사원대표가 회사이사회에 참가, 의견을 제시하는 길도 터놓고 있다.
물론 이들 제도는 아직 도입단계에 머물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시각차이가 좁혀지고 회사분위기가 바뀌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한화그룹의 「제자리 찾기 운동」도 그중 하나다.
이 운동은 생산현장에서 공구.부품을 가져다 쓴뒤 원래 자리에갖다놓고 빌려갈땐 메모판에 누가 가져갔는지를 적어놓자는 것으로청년중역회의 결의를 통해 자발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매우 사소한 것처럼 보이고 조용히 시작된 운동이지만 밑에서부터 큰 호응을 받고있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에 미치는 효과는 어느 캠페인보다 크다.
그래서 요즘에는 위로까지 퍼져올라가 사장들도 하루 일정.행선지를 공개,결재를 받기위해 기다리는 시간을 줄임으로써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李哲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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