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위상찾기”/소신행동에 민자 당혹/제목소리내는 이만섭국회의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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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현장검증 허용… 총리에도 호통/“난 당파초월” 일부선 「소영웅」비난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국회를 비롯한 여러 기관들이 자율 또는 타율적으로 「자기자리」를 찾게끔 만드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안기부·기무사는 활동범위가 축소됐다. 그런가하면 감사원은 구각을 벗고 종횡무진하는 활약을 보이고 있다. 이런 변화에 생리적인 거부감을 느끼는 세력도 없지 않다. 민자당안에는 이만섭 국회의장·이회창 감사원장·조규광 헌법재판소장을 「소영웅 3인방」이라고 부르며 뒷전에서 손가락질하는 이들도 있다.
○“항의받을일 한적 없다”
이만섭 국회의장은 감사원·헌재와 마찬가지로 최근 몇몇 사안에서 정부와 여당을 여간 곤혹스럽게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달 임시국회에서 황인성 국무총리에게 의사진행 발언에 대해 답변하라고 호통쳤다. 민자당의 입장에서는 과거의 관행에 비춰 볼때 기가 찰 노릇이었다. 실제로 김영구 민자당 총무는 본회의장에서 손으로 책상을 두드려가며 항의했다. 그러나 이 의장은 의장실로 따지러온 민자당측에 『항의받을 일을 한 적이 없고 항의받을 사람도 아니다』고 면박을 주었다.
이 의장은 또 헌법재판소가 지난 24일 13대 국회에서의 날치기 법안통과에 대해 조사한다며 국회 본회의장 현장검증을 요구하자 본회의장을 개방하지 않는 대신 의장실에서 검증을 대신하도록 절충해 주었다. 이 일도 여당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민자·민주 양당이 국정조사권 발동 문제로 지루하게 줄다리기를 계속하자 이 의장은 지난 26일 두 당의 원내총무를 의장실로 불러 반강제(?)로 악수를 시켰다. 31일부터 9월10일까지 국정조사를 벌인다는 전격적인 여야합의를 이끌어낸 것이다. 그는 나아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도 필요하다면 국회가 서면으로 질의,답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민자당의 입을 딱 벌어지게 만들고 있다.
이 의장은 스스로 『역대 국회의장중 신익희선생(1894∼1956·초대,2대 국회의장 역임)을 가장 존경한다. 나도 그분처럼 이 나라 민주주의의 발전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신익희선생 가장 존경
그는 『개인적으로는 언론계 출신 국회의장으로서 정말 잘 해야겠다고,구질구질하거나 비열한 짓은 절대 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자기들 손으로 뽑은 같은당소속 국회의장이 사사건건 일탈(?)하는 데 대해 민자당의원들이 「배신감」을 느끼는 대목에 이르러 이 의장은 『나는 대한민국의 국회의장이지 어느 한 정파의 의장이 아니다』고 쐐기를 박았다. 여야 특히 여당의원들의 의식전환이 오히려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적이탈 문제에 대해 그는 『국회법 개정이 걸린 사안에 대해 내개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면서 『당적에 관계없이 중립적인 입장에서 공정한 의사진행을 하면 될 것 아닌가』고 반문했다.
이 의장은 매우 직선적이고 어느 자리,어느 위치에 있든 할 말을 하는 성격이다. 정치부기자(동아일보)였던 자유당시절 국회 본회의장 기자석에서 자유당 의원들을 향해 『야 이 나쁜 놈들아!』라고 고함을 질러 속기록에까지 기록된 일은 유명하다.
이런 성격때문에 수난도 많았다. 5·16직후 「조속한 민정이양」을 촉구하는 윤보선씨의 기자회견 내용을 그대로 보도했다가 두달간 육군 형무소에서 고생했다. 「자립경제·자주국방을 부르짖는 농민의 아들 박정희」에게 반해 63년에 자청해서 공화당에 들어갔던 이 의장은 3선개헌을 반대하다가 박 대통령의 미움을 사 8,9대국회에 등원하지 못했다. 6·29선언 직전인 87년 6월24일 당시 국민당대표로 전두환 대통령을 만나 『군대를 동원할 겁니까』고 물은 뒤 『절대로 동원 안한다』는 다짐을 받고 『그렇다면 직선제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 의장은 김영삼대통령과의 오랜 인연을 갖고 있다. 5·16직후 형무소에 갇혔을 때 야당 정치인이던 김 대통령이 면회를 온 적도 있고,공화당행을 결심했을 때도 『서로 의리만은 변치 말자』고 다짐하던 사이였다고 한다.
○YS후보 순리론 펴
그는 지난해 4월 민자당 대통령후보 경선을 앞두고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게 『3당합당을 한 이상 김영삼씨가 후보가 되는 것이 순리』라고 주장했다. 그는 『노 대통령에게 「정치신인으로는 김대중씨를 상대할 수 없다」고 설득했다』고 털어 놓았다. 다음달 노 대통령과의 주례회동을 앞둔 김영삼 현 대통령을 63빌딩에서 만나 전날의 대화내용을 알려 주었으며,이같은 작업은 「YS대통령」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일부 여당의원들의 『이 의장은 너무 개인적 인기만 의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비판에서 보듯 그는 조직을 무리없이 끌고가는 능력에 대해선 부정적 평가를 받고있다.
그는 『정치는 국회가 주도해야 하며,국회는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2·12 율곡사업 등에 대한 국정조사도 과거를 파헤치는 차원보다는 앞으로의 위정자들이 정책수립에 귀감으로 삼도록 하는 데 의의가 있다는게 이 의장의 생각이다.<노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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