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선별판정… 청와대·연희동 반응/전씨는 “환” 노씨는 “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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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전씨도 답변 거부했는데 우리만…” 처리기준 섭섭/노씨/“해명서 성의껏 만들어 전달했으니 수용됐다”느긋/전씨/「답변협조」로 격낮추자 안도/청와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감사원조사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있다.
감사원이 똑같은 대국민설명중 전씨의 것은 답변으로 받아들였고,노씨에게는 질의서를 다시 보냈기 때문이다.
감사원측은 『끝내 거부하면 고발』이란 말까지 흘리고 있어 노씨측을 더욱 불쾌하게 만들고 있다.
전씨측은 일단 비구름이 걷힌데 대해 안도하고 있다. 노씨측은 『우리는 원칙대로 했으니 이제부턴 감사원이 알아서하라』고 겉으로는 반감마저 표시하고 있다. 연희동의 두 전직대통령의 안도와 우려를 가른 감사원의 선별 판정에 대한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감사원은 선별처리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일부의 문제 제기에 대해 객관적이고 뚜렷한 기준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설득력이 모자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노씨 모두 답변을 거부하긴 마찬가지였는데 감사원이 무슨 기준으로 전씨는 「합격」,노씨는 「불합격」 판정했느냐는 의문이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전씨도 정식답변서를 보내진 않았지만 대국민해명서의 사본에 자신의 도장을 찍어 「답변에 가까운 모양새」를 취했다는 것이다. 내용으로 보더라도 16절지 24쪽의 해명서를 감사원에 보냈고 질문 6개에 대한 답변을 거의 담고 있다고 한 고위관계자는 설명했다.
그러나 노씨는 이회창 감사원장에게 공문서형식으로 편지를 보내 답변거부의 뜻을 못박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국민 해명서는 제3자이름(정해창 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되어있을 뿐더러,내용도 질의 7개항중 3개정도만 설명되어 있었다고 관계자는 밝혔다.
감사원 설명은 객관적 법률기준에 의한 판단이라기보다는 정상참작에 기운 주관적 판단이라는 일부 지적도 있다. 설명내용의 분량문제,본인직접해명,질문사항 답변충족도 등을 고려했다고 하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이다. 예컨대 노씨의 경우 문항에 답변이 안됐는지를 밝히지 않았다. 따라서 이 부분은 만약 답변거부에 대한 검찰조사과정이 생길때 법률다툼의 불씨를 안고있다.
○…노 전 대통령측은 그래서 더욱 감사원을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다.
한 고위측근은 27일 일단 『우리는 처음부터 위법조사에 대해 답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역사에 남기려했으니 감사원의 그런 해석을 괘념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법적으로 보면 전 전 대통령도 답변을 거부했는데 왜 감사원이 편의적으로 해석하려하느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감사원의 재질의는 법적논쟁을 한층 가열시킬 것 같다. 조사의 법적근거를 따지는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리자 감사원은 이번엔 아예 이를 명시하기로 했다. 즉 감사원법 50조에 따른 답변 협조요구이지 직접감사는 아니라고 명시함으로써 노씨측이 체면을 상하지 않고 다시 「답변」할 수 있도록 한 유화적 묘수라고 할 수 있다.
감사원은 그러면서도 은근히 감사라는 뉘앙스를 풍기고있다. 감사원은 26일 선별처리에 관한 보도자료에서 『국방부 무기기종 선정의 정당성이 문제된 경우에는 그 행위가 대통령의 부당한 지시에 근거한 것이라면 감사원은 대통령의 지시내용과 타당성의 근거를 조사,확인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측은 감사원의 태도가 불투명하다고 꼬집고 있다. 한 책임있는 측근은 『대통령 재량행위가 조사대상이 될 수 있다고 내놓고,겉으로는 답변협조거부라니 진짝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또 『근거가 되는 「부당한 지시」의 증거가 있느냐』고 반박했다. 특히 참고인자격의 질의라고 해놓고 검찰고발 운운은 비약이 아닌가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번 감사원조사 사건은 헌법학계에 법리해석이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현재 다수의 헌법학자들은 『재임중 업무가 잘못 집행됐다는 상당한 근거가 있다면 전직대통령에게도 출석·답변·자료제출 등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한편 전 전 대통령은 우기후의 청명한 날씨를 느끼고 있다. 국회 국정조사라는 또 하나의 열대폭풍이 남아있지만 일단은 여유있는 분위기다. 대국민 해명서가 발표되던 26일에도 매주 그렇듯 북한산에 올랐다.
한 측근은 『비록 답변서라고는 안했지만 우리가 정성껏 만든 해명서를 전달했으니 감사원이 수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88년부터 등을 돌리고 있는 두 전 대통령측은 이번엔 실무적으로 협의했다. 대감사원 싸움에서 서로나누었던 이러한 양측 실무진간의 「공조」가 전·노 화해라는 미해결 영역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전직대통령에 대한 조사에 반대해온 청와대는 혹시라도 개입의 오해를 살까봐 공식적으로는 제3자의 이장을 취하면서 언급을 자제. 이경재대변인은 『무슨 말을 하겠느냐』며 무논평 자세를 반복.
청와대 관계자들은 그런 가운데 이 감사원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재질의를 추진하면서 감사가 아니라 답변협조요구라고 선을 낮춰 그은 것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김영수 민정수석은 『감사원과 노 전 대통령 양쪽이 다 나름대로 논리를 갖고 있다고 본다』며 평가를 신중히 했다.
다수의 청와대 관계자들은 전직대통령에 대해 ▲선례가 되고 ▲정치보복의 인상을 준다는 이유로 감사원의 정식감사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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