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 문의에 진땀 흘려요"|농구 선수 출신 여성 지점장 한일은행 채춘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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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지점장으로 발령 받은지 1주일만에 금융 실명제가 시작돼 정신없이 바쁩니다. 무거운 책임감 때문에 밤잠도 많이 설쳤죠. 정도에 입각한다는 원칙 아래 최선을 다해 「실명제 위기」를 헤쳐나갈 각오입니다.』
농구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여성 지점장이 된 한일은행 둔촌동 지점장 채춘자씨 (52). 승진 소감을 밝히는 그의 목소리가 남다르게 다부지다.
승진 축하 전화와 금융 실명제 문의 전화를 함께 받느라 바빴다는 채씨는 『지금은 오로지 금융 실명제로 인해 다소 혼란스러운 은행의 질서를 바로 잡는게 목표』라고 말했다.
채씨는 농구 선수로 은행과 인연을 맺어 은행원 생활 만29년만에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지점장에 오른 경우. 이화여대 사학과 재학 때인 61년 한일은행 여자 농구부 창단 멤버로 코트에서 뛰다가 64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은행원으로 일해왔다. 시중 은행 (외국 은행·국책 은행 제외) 여성 지점장으로서는 장도송 전 조흥은행 잠실 지점장에 이어 두번째며 장씨는 퇴직, 현재로서는 유일한 여성 지점장이다.
채씨는 몸이 약해 중 3학년 때부터 농구를 시작했다고. 대학교 때도 아르바이트라 생각하고 열심히 농구한 것이 은행원이 된 계기가 됐다며 웃는다.
매우 차분하지만 한번 시작하면 몰두해 끝장 (?)을 보는 저돌적인 성격이 다소 보수적인 금융제에서 살아남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단다. 직장은 남녀 사원 모두에게 교육과 업무의 기회를 동등하게 주어야하고 여성은 특히 목표를 세우고 이에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
『아직은 가명·차명 계좌가 움직이지 않고 실명을 확인하는 단계라서 문제는 없어요. 다만 96년 종합 과세가 실시되기 전에 횡행할 수 있는 차명거 래를 규제할 대책이 빨리 나와야지요.』
승진의 부담감에 짓눌린 것도 잠시, 직원들에게 원칙 준수·무사고를 지시하는 사이 자신감과 의욕이 다시 솟았다는 채씨. 그는 『사채도 얻기 힘들고 담보도 잘 안돼 대출이 힘든 중소기업이 문제』라며 『은행만으론 해결이 힘들고 제도적 조치가 마련돼야한다』 고 말했다.
서예를 즐기고 매주 등산을 빠뜨리지 않는 그는 아직 미혼이며 신길동 27평형 아파트에서80세 부친을 모시고 살고 있다. <이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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