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아메라시안 자료 연구 소장 방선주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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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재미 사학자 방선주씨 (62·미 아메라시안 자료 연구 소장)가 13일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소 (소장 이택휘) 주최 학술 심포지엄에 참석차 귀국했다. 방씨는 최근 수년간 우리 근·현대사의 공백을 메워줄 귀중한 역사 자료를 속속 발굴해내 크게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
방씨는 이번 심포지엄에서도 1944년 고 유일한 선생을 비롯한 재미 한인들이 미 전략 첩보국 (OSS) 소속 특수 공작팀의 일원으로 해방 전 국내에 잠입하려던 작전이 진행됐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냈다. 그는 이외에도 그간 정신대·김구 선생 암살·조선 공산당 등의 실체를 규명할 수 있는 많은 사료를 찾아내 국내 매스컴에 소개해 관심을 끌었다. 방씨는 국내보다는 국외에서 「사료 찾기의 귀재」로 이미 널리 알려져 일본·미국 등의 역사학자들도 한국의 근·현대사에 관한 한 그에게 자료를 요청할 정도다.
방씨는 세계 근·현대사에 관한 한 자료가 가장 많이 보관돼 있다는 미 국립 문서 보관소에 때로는 수십일씩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사료 발굴에 몰두하고 있다. 그가 찾아내는 문서는 「기밀」 스탬프가 찍혀 있거나 막 기밀에서 해제된 미공개 사료가 적지 않다. 방씨는 『한 아이템을 찾는데 보통 2∼3년 걸린다』며 『문서 보관소 관계자와 벌이는 승강이가 작업 중 가장 큰애로』라고 말했다.
숭실대·고려대에서 각각 학부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63년 도미한 그는 캐나다 토론토대학에서 고대 동양사로 박사 학위를 땄다. 고대 동양사, 특히 중국 고대사에 대해서는 중국학자 이상으로 정통해 있다고 자부하는 그는 하지만 『고대 동양사로는 밥벌이가 안돼 이 대학 저 대학에 보따리 시간 강사로 출강해 심지어 대수까지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방씨는 젊은 시절 과일 농장 노동자·택시 운전 등에 이어 고령에 시간 강사를 하는 힘든 미국 생활에도 불구하고 지난 86년에야 뒤늦게 귀국의 첫발을 디뎠는데 『그전까지는 박정희 장군이 무서워 못 왔다』는 것. 그러나 그는 최근 한림대 측이 교환 교수로 자신을 불러 줘 수년간은 고국의 강단에 서게 될 것 같다며 좋아했다.
외아들 수호씨 (대학 3년)에게 『죽어 고국 땅에 시신을 묻어 달라』는 말을 수 차례나 유언으로 반복했다는 방씨는 『새로 들어선 문민정부가 예상외로 잘 해나가고 있어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사학자로서 그는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애국 선열 유해 봉환과 관련, 서재필 박사의 경우 그 자신이 미국인으로 남길 원했으므로 그 유지를 받드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방씨의 부친은 서울 영등포 교회 방지일 목사. 부인 정금영씨는 인류학 박사로 미 하워드 대학 정교수다. <김창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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