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창립 80돌 맞은 KNCC 백도웅 총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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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대형 교회의 유명 목사들을 TV 프로그램 '체험, 삶의 현장'에 출연시키면 어떨까요. 배고픈 적이 없는 사람이 배고픈 설움을 모르듯, 고되게 일한 경험이 없는 사람은 노동의 존귀함을 모릅니다."

개신교의 진보 목소리를 대변해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의 실무를 책임진 백도웅(白道雄.61) 총무는 13일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교회의 자성을 촉구했다. 올해 창립 80돌을 맞는 KNCC의 신년 계획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白총무는 뜻밖에 10년 전 일어났던 서울 성수대교 붕괴 사건을 꺼냈다.

"당시 사고가 나자 119.적십자 대원에 이어 압구정 현대백화점 직원들이 비극의 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다리를 건너다니던 사람도 우리 고객'이라는 마음에서 팔을 걷고 나섰던 거죠. 그런데 인근 대형 교회에선 뒷짐만 지고 있었습니다. 큰 쇼크를 받았죠. 사회에 봉사하는 교회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白총무는 KNCC의 올해 목표 가운데 '새로워지는 교회, 교회다운 교회'를 첫째로 꼽았다.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의 한복판에 서서 '사회에 참여하는 교회'를 주도했던 KNCC의 변모가 주목된다. 일례로 오는 27일부터 연말까지 '월례마당'을 개최, 교회 개혁.교회 갱생과 관련한 지혜를 모을 계획이다.

그는 특히 한국의 대형 교회를 비판했다.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보다 교회 자체의 성장에 관심을 쏟아왔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감추고 싶은 경험도 털어놓았다. 80년대 말 그가 사목(司牧)하던 서울 반포의 교회 주변에 수해가 났을 때 양수기를 빌려달라는 동사무소의 요청을 교회 측이 거부, 주민의 원성을 샀다고 했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는 어느 정도 달성됐습니다. KNCC는 향후 교회 내부에도 눈을 돌리려고 합니다. 목욕도 새로 하고, 옷도 갈아입어야죠. 가난이 자랑은 아니지만 한국 교회는 옛날 선비 같은 청빈한 모습을 되찾아야 합니다."

白총무는 '틈새 인권'의 보호에도 주력할 생각이다. 사회의 관심도, 교회의 손길도 미치지 않는 '진짜 소외된 부분'을 돕겠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가을 교육인적자원부 앞에서 비를 맞으며 1인 시위를 하던 '장애아 통합교육을 위한 어머니들의 모임'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사회도, 교회도 가진 자들이 더 가지려고 조직을 키웁니다. 끼니를 거르는 아이들과 골고루 밥을 나눠먹는 그런 평화가 오기를 바랍니다." 점식 식사를 앞에 두고 그가 한 기도 내용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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