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세계바둑오픈' 수순의 극치가 담긴 자살의 묘수-14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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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제8회 세계바둑오픈 준결승 제1국
[제10보 (141~148)]
白.趙治勳 9단 黑.胡耀宇 7단

생과 사는 백지 한장 차이다. 수순의 오묘한 조화가 삶을 죽음으로, 죽음을 삶으로 바꿔 놓는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백척간두에서도 수를 찾아낸다. 전보의 백△는 묘수다. 이런 절망적인 형태에서도 수가 있다는 것은 진정 놀랍다. 검토실의 프로들이 이 수에 감탄하는 것은 그 수가 기기묘묘해서가 아니다.

보통이라면 벌써 포기할 만한 장소에서 기어이 뭔가를 추구하는 그 치열함에 혀를 내두르고 있는 것이다. 후야오위7단은 홀린듯 판을 보고 있다가 초읽기에 쫓겨 황급히 141로 시간을 연장한다.

전보에서 설명한 대로 막는 수는 없으니까 일단 143으로 는다. 바로 이때 후야오위는 또다시 무시무시한 일격을 당한다. 144로 밀고나오는 수. 스스로의 목을 칼날 앞으로 들이미는 조치훈의 이 한수는 수순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참고도' 흑1로 막으면 당연히 백 세점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백2로 끊은 다음이 문제다. 흑3 잡으면 백4, 6으로 양단수. 그렇다면 흑3 대신 다른 수는 없을까. 중앙 쪽으로 달아나는 수는 없을까. 없다. 백은 4로 모는 수뿐 아니라 5로 몰 수도 있다. 그걸 아껴두고 있어 흑이 어느 곳을 두어도 달아날 수 없다. 수순의 묘다. 144는 스스로 죽으려 했지만 죽지 않는 돌이다.

후야오위는 망령에 쫓기듯 145로 물러선다. 등줄기엔 땀이 흥건하고 눈앞은 아득하다. 146, 148로 백돌이 다 살아가는 것을 보며 문득 끝났음을 느낀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현실이 아닌 것만 같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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