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세력이 백제 건국" 입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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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연천읍에서 17㎞정도 북쪽으로 위치한 군사 보호 구역내 태풍 전망대 부근지역에서 한반도에서는 지금껏 발견되지 않은 회귀한 양식의 적석 무덤이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있다.
28일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소장 장경호)가 주관한 발굴현장 답사에는『백제강역에 웬 고구려 지배계층의 무덤인가』하는 호기심에 학계·관리·군인·기자 50여명이 몰려들어 때아닌 북새를 이뤘다.
발굴조사를 맡은 조유전 유적 조사 연구실장은 임진강변 모래밭 바로 옆에 우뚝 솟아 오른 돌무더기를 가리키며『압록강 중류에 집중 분포하고 있는 고구려 고유의 묘제인 적석 무덤이 한강 이북의 임진강변에서 처음 확인, 조사됐다』고 흥분의 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덧붙여『이것이야말로 고구려 세력이 남쪽으로 내려와 백제 건국의 주체가 되었다는「삼국사기」의 초기 기사를 입증하는 고고학적 자료』라고 말했다.
조 실장은 무덤의 축조양식이 종래 남한지역에서 발견된 적석 무덤과 판이하다며『동서 2개의 무덤을 붙여 축조한 쌍분 형식은 이번이 처음이며 구릉 남쪽으로 강돌을 한두겹 깔아 수해로 인한 무덤 침하를 방지하는 보호시설을 갖추고 있는 데다 적석 방단의 북쪽으로 의례를 갖추기 위한 제단을 쌓아놓은 것도 희귀한 양식』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발표현장에는 무덤에서 출토된 각종유물도 전시됐다. 동서 2개의 석곽에서는 돌 목걸이 2점과 쇠화살촉 2점·점토 토기편 및 부서진 인골이, 묘역과 분구 곳곳에서는 반파된 상태의 투날무늬 토기 4점과 남근형태의 석제품 등이 수습됐다고 발굴팀은 보고했다.
조 실장은 이들 유물의 편년을 서기 약 2∼3세기로 추정하는 한편 적석 무덤의 축조시기도 그 입지조건과 장축 방향으로 보아 서기 1∼2세기의 이른 시기로 잡았다.
『삼국사기』에는 백제 건국시조 온조왕의 재위연대가 서기18년에서 서기 28년까지로 돼 있고 또 온조가 고구려시조 주몽의 셋째아들로 기록돼 있어 혹시 이 무덤이 온조나 그 일족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견해가 제기되기도 했다.
온조왕이 재위 24년에 마한과 싸워 국토를 확장한데 이어 27년에는 마한자체를 멸망시켰다는 기록에 근거해 이 지역이 마한과 강역을 다툰 상징적인 곳일 수도 있다고 차용걸 교수(충북대)는 말했다.
우연히도 임진강지류가 돌아 흐르는 비옥한 지역에 위치한 봉분은 북쪽으로 산을 바라보는 평탄한 들판에 우뚝 솟아있고 제단도 시설돼 있다는 점에서『여느 돌무덤과는 달라 보인다』는 것이 고분 연구에 독보적인 김기웅씨(문화재 전문위원)의 이야기였다.
김씨에 따르면 남한지역에서 발견된 백제시대 적석 무덤으로는 서울 석촌동 1, 2, 3, 4기 외에 대구 구암동 적석총, 양주 문호리의 것 등이 있으나 모두 이곳보다는 뒷 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이번 발굴된 적석 무덤은 오히려 북한지역 자강도 초산군 운평리와 자강도 나성군 송암리 제33호, 88호 고분군과 흡사해 기본적으로 압록강변의 고구려 적석총과 동일한 형식이라며 조실장의 가설을 뒷받침하는 발언을 했다.
문화재 연구소는 91년부터 10개년 계획으로 군사 보호구역 내 문화유적 학술조사를 실시하고있는데 이 무덤은 91년 10월5일 지표조사 때 처음으로 확인, 이후 지난 6월21일부터 7월27일까지의 제 3차 조사로 어느 정도의 유구실측이 끝난 상태다.【연천=방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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