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프리초프카프라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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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지는 현상에서부터 바닷물의 간만현상까지 모든 현상은 하느님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었다. 모든 일이 하느님의 사슬에 꽁꽁 묶여 있었고 그 사슬을 조이고 푸는 대행자가 바로 교회의 성직자들이었다.
이렇게 중세기의 천년이라는 암흑기가 지나고 르네상스·종교개혁을 거쳐 소위 과학혁명의 세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아이잭 뉴턴이 살아있을 때 영국의 런던 뒷골목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입에서 『하느님이 뉴턴 있으라 하심에 이 세상에 빛이 있었네』라는 첫 구절로 시작되는 동요가 흘러 나왔다는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당시 영국사회에서 뉴턴의 위력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마디로 뉴턴은 당시의 영국사회에서는 다시없는 구세주가 아닐 수 없었다.
꽁꽁 묶여 있었던 하느님의 사슬을 뉴턴의 만유인력은 대단한 힘을 발휘하면서 여지없이 끊어버렸던 것이다.
이와 함께 인간해방의 물결은 노도와 같이 전 유럽을 휩쓸었다.
신의 영역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오늘날 고전역학이라고 불리는 뉴턴 물리학의 새로운 메커니즘이 들어앉게 되었던 것이다.
소위 뉴턴의 패러다임은 「결정론적 인과율」이다. 모든 운동의 원인이 되는 초기 조건만 정확히 알면 그 결과는 뉴턴의 운동방정식에 의해서 기계적으로, 다시 말해 필연적으로 얻어진다는 것이다. 뉴턴의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시대가 2백년동안 지속되었다.
따라서 「세기부터 20세기초까지의 뉴턴의 패러다임시대는 뉴턴 물리학이 완전히 지배하는 시대였다.
이 기간은 뉴턴의 물리학이 적용되는 현상만이 과학이며 뉴턴의 물리학이 적용되지 않는 현상은 비과학이요, 한낱 소음에 불과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1905년에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 발표되고 1912년엔 일반상대성이론이 발표된다. 그리고 1927년에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발표된다.
다시 말해 뉴턴의 패러다임이 전지전능한 신을 대신했던 시대는 종언을 고한 것이다.
뉴턴의 패러다임은 소위 인간의 가시영역인 3차원의 공간에서만 적용될 뿐 1초에 30만km의 광속이 적용되는 4차원의 시공영역과 원자세계를 지배하는 미시영역에서는 그 효력을 잃고 만다.
아마 독자들은 이상과 같이 매우 간략하게 더듬어 본 과학의 역사를 통해 최근 문제되고있는 양자역학의 상당치 깊은데 까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이 밝히고자 하는 점은 현대에 이르는 과학이론의 발전과정 자체가 아니라 뉴턴의 패러다임이 무너지고 아인슈타인과 하이젠베르크에 의해 등장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의미와 그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인 프리초프 카프라는 빈대에서 고에너지물리학분야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유럽과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자기의 전공분야인 고에너지 물리학을 강의하였다.
그러나 그는 88년에 세 번째로 내놓은 『탁월한 지혜』라는 저서의 머리말에서 전공분야인 물리학 연구분야의 정규 직장에서 마지막 봉급을 방은 것이 70년 4월이었다고 술회하고있다. 그후로 그는 여러 대학에 소위 종신 교수직을 얻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였으나 허사였다는 사실도 고백하고있다.
다시 말해 그는 물리학이라는 자기의 전공분야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하고 일종의 이단 취급을 받은 물리학자임을 알 수 있다.
필자가 처음으로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TAO OF PHYSICS)이라는 그의 첫 작품을 대한 것은 78년이었다. 회의 참석차 미국에 갔다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대학구내 서점에서 제목에 끌려 책을 산 뒤 귀국길 비행기 안에서 읽기 시작했다.
머리말의 첫줄에서부터 필자는 저자가 신비체험에 의해 이 책을 쓰게 된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해변에 앉아 파도가 일렁이는 것을 바라보면서 내 숨결의 리듬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우주적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을 돌연 깨달았다.』
이렇게 쓴 저자는 바로 고에너지물리학자로서 소위 원자를 구성하고 있는 소립자들의 산란현상 및 삼라만상과의 신비로운 호화를 자기의 신비체험을 통해 규명하기 시작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완전한 객관적 현상만을 과학의 대상으로 삼았던 뉴턴의 패러다임을 뛰어넘어 주관적인 관찰이 중요한 관측수단으로 등장하는 물리학의 양자역학에서 동양사상의신비성을 찾게 된다.
그래서 그가 소위 동양의 신비주의라고 부르고 있는 힌두교·불교·중국사상, 그리고 도교 및 선에 관해 논하고 있다.
우리말 번역 50쪽 미만의 분량만으로 이 동양의 정신주의 철학이 충분치 설명될 까닭이 없지만 그러나 우리는 저서 전체를 통해 그의 끈질긴 노력에 깊은 감명을 받게 된다.
처음에는 필자도 좀 피상적인 제멋대로의 대비라고 의심했지만 그가 이 저서에 이어 82년에 출판한 『새로운 대응과 문명의 전환』(THE TURNNING POINT), 『탁월한 지혜』(UNCOMMON WISDOM) 등을 읽고 나서 저자가 얼마나 눈물나는 노력으로 이 같은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게 되었는지를 비로소 깨닫게되었다.
한때 직장을 얻지 못한바있는 그는 이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의 대저술가로 이름을 널리 떨쳤는데 1백만권에 육박하는 저서 판매량은 그에게 엘름우드연구소를 운영할 수 있는 충분한 자금을 제공하였다.
그래서 그는 한때 인류에 해방을 가져다 준 과학기술문명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생태학적 비전을 제시하는 신과학의 기수로서 오늘의 새로운 과학사상의 일익을 담당하고있는 것이다.
다행스럽게 우리 나라에서는 위에 소개한 세 권의 저서가 정성스럽게 번역돼 출판되고 있다.
상반된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던 서양과 동양의 사상이 오늘의 첨단과학이론에서 그 접합점을 찾음으로써 지금까지의 논리적 환원주의를 극복하고 통전적이고 전일적인 새로운 패러다임의 확립으로 인류역사에 일대 전환점이 마련될 수 있겠다는 값진 소망을 우리에게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김용준<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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