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초과학에 너무 등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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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영국에서 발행되는 세계 최고 권위의 과학기술 학술지인 『네이처(NATURE)』가 29일자 최근호에서 지난 72년의 일본특집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로 한국특집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이번 특집은 한국과학기술에 대한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다는 자랑스러움과 함께 한국과학기술이 나아갈 방향을 따갑게 지적해주고 있어 국내 과학기술계에 신선한 충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8쪽에 달하는 이번 『네이처』지의 한국특집은 개발도상국을 선도하고있는 한국의 문민정부 출범과 다음달 7일 개막되는 대전엑스포를 계기로 세계과학기술계에서 떠오르는 별로 부각될 것이라는 데이비드 스원뱅크스 동경특파원(40)의 얘기로 시작된다. 다음은 그의 한국특집기사를 간추린 것이다.
한국의 과학기술계는 지난70년대의 일본처럼 역동적이고 급변하는 환경을 갖고 있어 상당히 활기차 보인다.
특히 과학기술계의 놀랄만한 변화는 간혹 사람들을 당황케 한다.
일본이 1백25년 동안 달성했던 경제적 위치를 한국은 단지30년만에 이룩했다. 철강·자동차·조선·전자분야에서는 세계적인 위치로 올라섰다.
정부출연연구소는 물론 기업체연구소등 각종 연구소가 급격히 늘었으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통폐합 등 연구소 자체도 변화가 심하다. 특히 포항공대처럼 2년만에 세계적인 대학을 설립하는 것도 한국만이 할 수 있는 놀랄만한 일이다.
특히 김영삼 대통령은 2001년까지 GNP의 5%수준인 4백20억달러 정도를 과학기술계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과학기술이 한국경제의 살길이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고 있다.
한국의 교육열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다음주에는 세계과학기술의 경연장인 엑스포가 개발도상국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의 대전에서 1백개국 이상이 참가한 가운데 개막된다.
그래서 한국 과학기술의 전망은 밝다.
그러나 한국은 기초과학보다는 생산기술을 너무 강조하는 것 같다. 많은 과학기술계 지도자들이 생산기술에 역점을 둠으로써 대부분의 과학기술정책들이 눈앞의 결과에만 치우치고 있다.
결국 기초과학이 무시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대부분의 대학들은 가난한 재정으로 실험다운 실험을 못하고 있다. 서울대를 비롯해 한국대학들은 실험실의 가장 기본인 현미경마저 형편없는 수준이다.
90년도 세계 유수 과학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수에서 한국은 세계 32위에 그쳐 개발도상국 중에서도 뒤쳐져 있다.
기초과학은 언젠가는 눈앞의 생산기술로 바뀐다는 사실을 한국의 과학정책자들은 인식해야할 것이다.
한국은 현재 정부출연연구소가 대거 참여하는 국가연구과제인「G7프로젝트」를 통해 2001년까지 HDTV와 메모리반도체칩 등 첨단제품을 개발해G7국가로 입성하려고 한다.
그러나 G7프로젝트는 연구과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결코 정부출연연구소가 나서서 할 일이 아니다.
진실로 G7국가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G7프로젝트는 삼성종합기술원 등 능력을 갖춘 기업체연구소에 맡겨도 충분하다.
한국의 민간연구소는 양적으로도 91년 현재 1천12백여개에 이르는 등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룩했다.
따라서 정부출연연구소는 기초과학과 원천기술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는 등 예전과는 다른 연구방향을 수립해야할 것이다.
또 국가과학기술을 종합관리할 수 있는 구심체가 필요하다. 보다 멀리 보고 국가적 차원에서 과학기술지원이 이뤄져야한다.
과기처와 상공자원부는 국가과학기술의 백년대계보다는 상호조직간의 불협화음으로 제대로 굴러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부처이기주의가 팽배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과기처는 국가과학기술의 방향을 종합적·거시적으로 수립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한다.
이를 위해 과기처에 강력한 힘을 주거나 아니면 강력한 권한을 가진 경제기획원으로 흡수해 실무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행정개혁위원회에서 조만간 정부조직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어쨌든 과학기술이 국가산업에 가장 중요한 분야임을 인식하고 중요시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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