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추락 주부 헬기로 구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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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전 항공구조대원이 북한산서 사고목격/수방사 허락 얻은뒤 자신이 공중구조
그것은 스릴 가득한 한편의 영화나 다를게 없었다.
주인공은 빨간베레모(항공구조대) 출신의 최선씨(35·한국항공 영업부 대리).
줄거리는 암벽 등반중 20여m 절벽 아래로 떨어진 한 40대 주부를 최씨가 헬기로 구조하는 내용.
지난 23일 낮 12시20분쯤 최씨는 북한산 대남문에서 성곽보수 작업현장을 둘러보던중 한 중년 남자 등산객으로부터 『인근 문수봉 준턱으로 여자 한사람이 굴러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는 다급한 목소리를 접했다.
최씨는 공사관계자 등과 함께 죽어라 달려 조난현장 부근에 도착했다. 이때가 12시35분쯤. 직선거리로 10여m쯤 떨어진 절벽중턱 소나무 밑둥지에 피투성이가 된채 걸려있는 등반객 한명(박남희씨·45·서울 서교동)이 눈에 들어왔다.
손에 닿을듯 가까운 거리였지만 양복차림의 그는 곧바로 현장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 같이 구조하러간 작업반장이 바위를 우회해 사고 지점에 도착했지만 그 역시 환자가 의식 불명이고 머리 곳곳이 깨져 있는 등 부상이 심해 육로수송은 불가능하다고 소리쳤다.
공군에 근무할때 항공구조대 출신이었던 최씨는 헬기를 쓸 수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인근 문수사까지 단숨에 뛰어온 그는 수도방위사령부 상황실에 급전을 보냈다. 『위급환자가 있다. 헬기사용을 허락해 달라.』
12시50분 군부대의 비행허가가 떨어졌다. 원래 이 지역은 비행이 엄격히 통제되는 구역(P­73). 곧바로 인근 고양시 솔고개 헬기장에서 한국항공의 BK­117 헬리콥터가 떴다. 이 사이에 최씨는 현장물 적재망을 응급환자 구조용으로 개조했다.
오후 1시15분,화물적재망에 탄 최씨를 매단 헬기가 현장 상공에 도착했다. 기장 송상하씨(50)는 암벽에 최대한 가까이 헬기를 댔다. 프로펠러가 암벽에 부닥치면 그야말로 대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10,9,8,7,6m. 프로펠러에서 암벽까지의 거리가 5m쯤 된 상태에서 기장 송씨는 최씨에게 사인을 보냈다. 「더 이상 접근은 불가능하다. 이쯤에서 구조를 시도하라」는 수신호였다.
최씨는 공중에서 화물적재망이 빙빙돌아 머리가 어지러운 상태였지만 정신을 바짝차리고 준비해간 3m정도의 막대기를 사고지점쪽으로 내밀었다.
사고지점에서 조난환자를 돌보고 있던 인근 문수사의 스님 한분이 몇차례의 시도끝에 어렵사리 막대기의 한쪽 끝을 낚아채 적재망을 잡아당겨 최씨를 랜딩시키는데 성공했다.
너댓명의 사고지점에서 최씨는 조심스럽게 환자 박씨를 화물적재망에 실은후 다시 헬기에 이를 연결,오후 1시30분쯤 응급차량이 기다리고 있는 헬기장에 안착했다. 와이셔츠는 피로 물들고 최씨의 온몸은 땀으로 젖었다.
서울 청구성심병원에 입원중인 박씨는 안면 등에 수십바늘을 꿰매는 대수술을 받았으나 조기에 구조돼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이날 아들(중1)과 함께 문수봉을 등반하다 이끼에 미끄러져 추락사고를 당했던 것.<김창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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