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직도 「시간외수당」줘라”/노동부/한국투신에 첫 강제지급 명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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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줄수 있다”를 “줘야한다”로 개정/노사협약 새 쟁점될듯
사무직 근로자들의 시간외 근무수당 지급문제가 올해 각 직장의 노사간 단체협약에서 새로운 쟁점으로 등장하게 됐다.
노동부는 지난 21일 한국투자신탁에 대해 금융권에선 처음으로 시간외 근무수당 지급에 관한 취업규칙을 근로기준법에 맞도록 「시간외 근무수당을 지급할수 있다」에서 「시간외 근무수당을 지급한다」로 고치라고 직권명령을 내렸다. 이를 계기로 6개 시은노조는 이미 올 단체협약에서 시간외 근무수당 지급체계를 쟁점으로 삼기로 했으며 일부 대기업의 경우 근무시간과 시간외수당 지급체계를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있어 앞으로 이 문제는 노사간엔 물론 「일하는 시간」과 「노는 시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우리나라 사무직 근로자의 근무양태에까지 큰 변화를 몰고올 것으로 보인다.
한국투신 노조는 지난달 22일 현행 취업규칙상 「시간외 근무당을 지급할수 있다」는 조항이 근로기준법에 위반된다며 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심사결과 노동부로부터 「시간외 근무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강제의무 조항으로 개정하라는 직권명령을 받아냈다.
은행권의 경우 91년 단체협약결과 75년 이후 중단됐던 시간외 근무수당을 지급키로 하고 실시중에 있는데 대부분 은행이 사전에 시간외 근무수당에 대한 예산을 미리 책정해놓은뒤 이에 맞춰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용하고 있다.
한편 조흥은행 노조도 최근 시간외 근무 처리전담반을 구성,최근 실태파악에 나섰으며 시중 6개 은행노조도 올 단체협약에서 시간외 근무수당의 성실한 지급을 쟁점으로 삼기로 의견을 모았다.
은행이 아닌 일반 대기업의 경우도 사무직 근로자는 지급조항은 있으나 생산직과 달리 일정액을 포괄적으로 받은 형태로 시간외 근무수당을 받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실제 초과근무에 대해서는 부서장에게 사전신고하게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해 단체협약 등에서 늘 문제돼왔다.
특히 중소기업은 취업규칙 등에 근로기준법이 정한 시간외 근무수당을 명시조차 하지 않은 경우도 많으나 노동부의 감독인원 부족 등으로 제대로 실태파악이 되지않은 가운데 대부분 자발적으로 일하는 형태로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한편 삼성그룹은 최근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의 근무시간 변경에 따라 오후 4시이후의 근무를 철저히 없애는 대신 점심시간을 시간외 근무로 인정,종전과 같은 수준의 수당을 지급하기로 하는 등 사무직 근로자들의 근무체제와 시간외 근무수당 지급체계 자체를 획기적으로 바꿨다.
◎해설/진짜 일하는 시간 산정어려워/근무행태·봉급체계 파란 예상
사무직 근로자들의 시간외 근무수당 문제는 근본적으로 우리의 일하는 습관,그에 따른 봉급체계 등에서 비롯된다.
서구 선진국의 경우 생산직은 시간급,사무직안 연봉제로 봉급을 받으며 「일하는 시간」의 개념이 명확하다.
그러나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은 우리의 경우 생산직은 잔업계산이 명확해 별 문제가 없지만 사무직은 노든 사든 업무시간에 대한 의식이 희박하고 연봉 아닌 월급체제로 봉급이 지급되고 있어 시간외 근무에 대한 정확한 산정자체가 어렵게 되어있다.
실례로 노동부의 이번 직권명령에따라 한국투신 노조측은 지금까지 「사전신청」에 의해 지급돼오던 시간외 근무수당을 「더 일한 시간 만큼」 지급되도록 단체협약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막상 「정확한 근무 시간」을 따지기란 현재의 근무체제와 봉급체계 전체를 개선하지 않고는 어렵게 되어있다.
노동부의 이번 직권명령으로 법상 의무화되어 있으나 사실상 제대로 운용되지 않고 있는 사무직 시간외 근무수당 문제가 쟁점이 될 경우 우리의 일반적 근무 행태와 봉급체계 전반에 적지않은 파란이 일 전망이다.<홍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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