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택대표/「대권도전」 자신감 붙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잇단 외부연설 「21세기」 부쩍강조/DJ 버금가는 비서실 진용 구축
이기택 민주당대표가 요즘 싱글벙글 자주 웃는다. 걸음걸리도 전보다 날렵하고 어깨엔 힘이 실려있다. 신바람이 스며든 목소리에서는 언뜻 언뜻 「대권에의 의지」가 배어나온다. 그는 뭔가 매우 고무된듯 하다.
지난 20일 제주 하얏트호텔 현관앞. 제1야당 대표로서는 처음으로 전경련 세미나에 초청된 이 대표가 호텔을 떠날 때다. 최종현 전경련회장은 이 대표가 차안에 앉아 한 방송과 인터뷰를 하자 문밖에서 6∼7분 대기하다 정중히 배웅하는 「예우」를 갖추었다. 전경련 회장과의 만남자체가 쉽지 않았던 과거와 비교해보면 이 대표가 격세지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 대표는 귀경하여 『앞으로 야당에도 지정기탁금이 많이 들어올 것』이라고 자신만만해 했다.
○“나는 전통 야 대표”
이 대표로선 첫 「자질테스트」였던 관훈토론회(8일)를 무사히 넘긴데 이어 전경련 세미나 초청연설(20일),도산 아카데미조찬강연(21일) 등 잇따른 외부 강연초청에 응하며 즐거워 한다.
이 대표는 자신의 「자리」가 신익희·조병옥·유진오·김대중에 이은 정통야당 대표의 반열임을 늘 강조하고 있다. 지산의 위상을 인정받는 듯한 흐뭇한 표정이 그에게서 역력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5이 대표는 사석에서 『말한마디만 하면 큰 뉴스가 되더라』며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미소를 짓기도 했다. 비서실은 하루 3∼4차례씩 밀려오는 각종 강연·모임참석 요청을 선별하느라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대선지원유세에 나섰던 공동대표 당시 비서진들이 이 대표의 「초라한 행차」를 견디다 못해 『체면유지를 해 달라』며 보도요청을 하던 때의 표정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신 정부초기 김영삼대통령의 개혁드라이브에 밀려 『지도력부족』 비판을 받으며 안팎으로 주눅이 들어있던 이 대표가 이처럼 회생하게 된데는 명주­양양보선 승리가 기폭제가 됐다.
곧 이어 있은 여야 영수회담은 이 대표를 김영삼대통령의 카운터파트로 인정케하는 계기가 됐다. 유럽 4개국 순방은 이 대표가 자신감과 여유를 갖는 충전의 계기가 되었다는게 측근들의 분석이고 귀국한 김대중 전 대표는 「이 대표 지지」를 다시 선언해 당내 비판세력들의 말문을 막아 버렸다.
○보선승리 기폭제
요며칠새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대표는 『자꾸 이런식이면 대표를 그만 두겠다』고 까지 한다. 「아홉명의 난쟁이」에는 더 이상 끼지 않겠다는 투다. 최고위원들의 극성도 점차 수그러들어가는 추세다.
자신감에 찬 이 대표는 대여공세의 톤도 한층 높이고 있다. YS개혁자체는 수긍해왔던 그가 최근에는 『김영삼대통령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20일·제주) 『김영삼개혁의 최대의 적은 민자당(21일·도산 아카데미연설)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나아가 『현 정권은 진정한 정권교체가 아니며 진정한 개혁세력인 민주당의 집권이 아니고는 개혁이 불가능하다』고까지 주장했다.
이 대표는 최근 행보에는 대권을 향한 포석의 징후가 역력히 보인다. 지난 8일의 관훈토론회에서 이 대표는 『정치하는 사람의 궁극적 목적은 대권을 장악해 그동안 정치를 하며 품은 생각·철학·포부를 내 주관에 따라 마음껏 펼쳐보이는 것』이라고 밝혔다. 「대권도전」의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20일의 제주연설에서는 『나의 정치력도 양김에 결코 못지않다. 너무 일찍 커 다른 사람의 질시를 받아 희미하다는 소리가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에 고수위 공세
그는 최근의 연설에서 「21세기」를 부쩍 강조하고 있다. 21일의 도산 아카데미 연설에서 이 대표는 『당면한 개혁은 21세기를 준비하는 미래지향적 개혁이 돼야 한다』고 톤을 높였다.
심지어 그는 『20세기 우리 역사는 한마디로 반민족적·반민주적·반사회적 굴절의 역사』라고까지 하며 21세기의 비전을 강조했다. 다음 대선은 97년말. 결국 21세기의 청사진이 최대쟁점일 수밖에 없다. 이 대표의 측근들은 「이슈선점」이라는 계산이 있음을 부인치 않고 있다.
이 대표는 26일께 비서실을 대대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차장 3명이 고작이던 「구멍가게」 비서실을 10명의 특보와 8명의 보좌역으로 구성된 매머드 비서실로 발진할 계획이다. 대선당시 DJ비서실의 「위용」에 버금가게 할 참이다. 게으름이 「단점」이었던 이 대표는 최근 회의 참석시간을 어기는 법이 없다. 「이미지관리」에도 무척 신경을 쓰고있는 것이다. 최근 이 대표의 유일한 고심은 DJ와의 관계정립. 자신의 당내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DJ의 지지는 필수적이다. 반면 DJ의 영향력에 너무 침식을 당할 경우 「홀로서기」의 장기적 구도에는 마이너스가 되리라는 복합적 계산이 이 대표 진영에 깔려 있다.
최근 제주발언에서 『DJ가 재출마하면 밀어줄 용의도 있다』고 했다가 『나도 못지않게 잘 할 수 있다』며 혼선을 빚는 것은 줄타기를 하는 이 대표의 한 단면이라 하겠다.<최훈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