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얽힌 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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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우하 하, 당신이 신문 연재에 들어간다고. 당신도 작가인가』담당기자로부터 신문연재 청탁을 받고 신문사에 들른 최인호씨를 처음 보고 편집국장이 대뜸 내뱉은 말이다. 연재작가로 원로·중진들만 대해 오다 최씨는 27세라는 젊은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였기 때문이다.
신문연재사상 최연소에다 장편은 한편도 발표하지 않았기에 신문사 측은 믿기 지 않아 연재에 앞서 대강 줄거리까지 원했다.『별들의 무덤』이란 실존적 냄새가 풍기는 제목도『조간신문에 재수 없게 아침부터 무슨 무덤이냐』며『별들의 고향』으로 바꿔 버렸다.
곱슬머리 최씨는 옥니를 다물며『신출내기로 무시해 버린 작가 대접에 반드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 날을 오게 하겠다』며 연재에 들어갔다. 장안의 화제를 모을 수 있도록 재미있고 슬프게. 하루하루 연재가 진전되면서 서서히 독자들이 빠져들며 들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도대체 최인호란 작가가 누구냐』『여자냐, 남자냐. 어찌 그리 여성의 시시콜콜한 심리까지 꿰고 있느냐』는 등 독자반응이 달아올랐다. 대단원의 막을 내리자 편집국장은『처음엔 미안했다』며 최씨에게 손을 내밀었다.
연재를 마치고 73년9월 예문관에서 상·하2권으로 출간된『별들의 고향』은 단숨에 1백만 부나 팔려 나갔다. 최씨의 얼굴을 궁금해하는 독자들을 위해 뒤 표지 거의 전부를 얼굴사진으로 채워 출판사상표지에 작가사진을 담은 최초의 책이 됐다.
최씨는 그 인세로 개발바람이 불던 강남에 땅을 사 호화주택까지 지었다.
소설책 1백만 부 돌파라는 공전의 기록은 소설만 써서도 먹고살 수 있다는「전업작가」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보통 1천부, 화제작이 됐 자 기껏 몇만 부 팔리던 시대의 작가들은 대부분 다른 생업을 갖고 글을 써야만 했다.
그러나『별들의 고향』의 상업적 성공에 힘입어 조선작·조해일·한수산·박범신씨 등 이 새로운 감성으로 팔리는 작품들을 쏟아 내며 소설에만 전념했다. 당연히 신문 연재소설도 그들에게 돌아가고 문단의 세대교체도 이뤄졌다.
74년 이장호 감독에 의해 영화화돼 관객 50만 명을 동원, 역시 이 부문에서도 흥행기록을 세워 『별들의 고향』은 70년대 최대 화제작으로 자리를 굳혔다.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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