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현실(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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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왜 도시가 이렇게 지저분하고 복작대는가. 좁은 도시에 많은 인구가 유입되었으니 더럽고 혼잡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유입 인구를 모두 각자 살던 고향으로 돌려보내면 될 것이 아닌가. 바로 이런 발상으로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 정권은 집권초 수도 프놈펜에 살고 있던 이농민들은 한날 한시에 「고향 앞으로 갓!」하는 법을 마련했다.
당시 크메르 루주 정권이 얼마나 삼엄하고 무서웠던가. 일체의 예외가 허용될 수 없었다. 한날 한시에 남부여재하고 고향 찾아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도 처량하기 짝이 없었지만 이들 인파 속에는 병원에 입원중인 중환자들마저 링게르를 꽂은채 침대에 누워 끌려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외지에 실리면서 크메르 루주 정권의 잔학성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어제 중앙일보 「독자의 광장」에는 이리시에 살고 있는 한 독자의 간절한 호소가 실려 있었다. 그는 집 한칸 마련하고 싶은 일념으로 결혼 10년만에 빚을 안고 시내 변두리 밭 85평을 구입했다. 당장 집을 지을 돈이 없어 발 부근의 집에 세들어 살면서 푸성귀를 가꾸어 먹고 있는 형편인데 어느날 갑자기 2백85만원의 토지초과이득세를 내라는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그는 지금 세금 낼 돈이 없어 나라에 땅을 빼앗길 것만 같은 절박한 심정에 빠져있다고 호소했다.
다행히 토초세의 현실적 문제점에 대해 정부 여당이 발빠른 보완책을 발표한다니 억울한 사람들의 호소가 상당수 해결되리라 기대한다. 이번 토초세 파문에서 보고 있듯 법과 현실이란 이렇듯 단칼에 무 자르듯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로 둘러싸여 있다. 매사가 탁상위에서 생각하는 식의 단순논리나 도덕성만으로는 풀 수 없는 현실의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이다.
가진 사람의 토지 과소유를 막기 위해 만든 선의의 법이 없는 사람의 마지막 재산까지 빼앗아가는 법으로 적용된다면 이는 세상을 그르치는 악법이 된다. 그래서 법이란 인체의 실핏줄처럼 고르고 세밀하게 퍼져있어야 한다. 노는 땅만 가졌으면 중과세고,농촌에서 흘러들어온 사람이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단순한 법으로는 원래의 취지를 살리는 선의의 법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법이 현실을 무시한채 융통성없이 적용되고 개혁이 도덕성만 강조한채 현실 사정을 외면하면,그 또한 반문민적 강압정치가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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