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철교사의 삶을 가꾸는 숙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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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마을신문이나 가족신문 만들기, 생활주변의 외래어들을 순수한 우리말로 바꿔보기, 자신이 쓴 글로 낭송테이프 만들기, 시내 상점간판들을 조사해서 그런 이름을 붙인 이유를 알아보고 순한글과 외래어로 분류해 보기, 자신이 정한 TV프로그램을 본 뒤 생각과 느낀점 정리하기, 부모의 직장에 찾아가 어떤 일을 하시는 지와 어려운 점 알아보기, 바람·구름·모기 등 관찰일기, 가족들이 부른 노래나 악기로 연주한 음악들을 녹음·편집하기, 우리고장의 민요 수집….
이호철교사(경북 경산중앙국교)는 이번 여름방학을 2주일 앞두고 방학동안 이 같은 개인별과제 가운데 어린이들 스스로자신의 취미와 능력에 맞는 것들을 골라 해보도록 했다.
「삶을 가꾸는 재미난 숙제」.
올해로 교사생활 18년째 접어든 이교사가 화두인양 늘 가슴에 새기며 끊임없이 그 새로운 방법들을 찾아내고자 애쓰는 점이다. 공부에 시달리느라 친구·자연 등 삶을 즐겁고 신나게 해주는 것들로부터 자꾸 멀어져 가는 어린이들을 안타깝게 지져보던 이교사가 숙제를 그 돌파구로 삼기 시작한 것은 지난 91년. 바깥바람을 쐬면서 시험공부에 찌든 마음을 씻고 자연관찰도 겸할 수 있도록 주말마다 산이나 들에 나가 뜯어온 나물로 음식 만들어 먹기, 버들피리 만들어 불어보기, 손톱에 봉숭아물들이기 등 「숙제답지 않은 숙제」를 내주자 어린이들은 이교사의 기대 이상으로 즐거워했다. 산이나 들판에 나가 각자 하고싶은 이야기를 세가지씩 큰소리로 외쳐보라니까 「자장면 먹고싶다」「다시는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겠다」등 저마다 가슴에 묻어뒀던 희망들을 터뜨리고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왔다」고 일기장에 쓴 어린이들도 많았다. 냇가에 가 예쁜 돌을 세개씩 주워오라고 한 뒤 다음 주말에는 다시 제자리에 갖다두라니까 「처음에는 우스웠지만 역시 돌은 제자리에 있을 때 가장 제멋이 난다는 걸 깨달았다」며 자연에 대해 새로이 눈떴다는 어린이가 상당수. 부모님 발을 씻어 드리거나 안마해드리기 등의 숙제를 한 뒤에는 부모와 매우 다정한 대화시간을 갖게 돼 참 기쁘다는 등 반응이 컸다. 최근에는 버스정류장에서 담배꽁초 등 쓰레기를 주워 쓰레기통에 넣으라는 주말숙제를 냈다. 그후 어린이들은「무심코 과자봉지를 내버리려다 쓰레기 주워담던 숙제 생각이 나 쓰레기통에 넣었다」는 식이어서 쓰레기교육 효과도 만점.
『무턱대고 베껴 쓰는 식의 숙제보다는 이런 「숙제답지 않은 숙제」들이 어린이들의 생활습관을 변화시키거나 관찰력·창의력을 기르고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울 수 있어 참 좋습니다. 특히 글감이 풍부해지니까 일기내용도 놀랍도록 생생하고 풍부해 지는군요.』
이교사는 여느 때나 다름없이 방학중 소집일, 그리고 자신의 당직일에는 전화로 어린이들이 방학중 연구과제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아볼 계획. 개학하면 각자 큰 종이에다 자신이 연구·조사한 과정이며 결과를 정리해 발표하면서 자랑스러워할 어린이들의 모습을 상상만 해도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김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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