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격려에 “화답은 해야 겠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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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주문사항 감은 잡았지만/재계 정책가늠 못해 불안/설비투자 연초계획서 머뭇/계열사 정리내용도 업종전문화와는 거리
최근 재계가 한편으로는 고무된 표정이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론 고민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김영삼대통령이 재계 총수들과 만나 경제활성화에 앞장 서도록 당부하는 등 각별히 배려하는데 대해 활기차게 화답을 해나가야 하는데 이게 생각만큼 쉽게 되지가 않기 때문이다.
재계는 모든 것이 불투명했던 새 정부 출범초기와는 달리 이제 정부의 대기업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대통령의 경제관과 특히 대기업에 대한 주문사항은 어떤 것인지 상당히 감을 잡은 눈치다.
대통령이 최근 각종 행사석상에서 행한 일련의 발언만 모아봐도 『게임의 룰을 지킨다는 전제하에서 마음놓고 기업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테니 대기업들이 앞장서서 투자하고,기술개발에 힘쓰고 근로자들 잘 챙겨 경제회복을 앞당겨달라』는 메시지가 금방 전달된다는 것이다.
또 경제가 의욕과 원칙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자각과 단기적인 성과를 강요하지도 않겠다는 뜻을 담고있는 듯한 대통령의 발언도 이어져 재계로서는 상당히 반갑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에따라 재계는 전경련과 정상급 재벌그룹을 중심으로 소유분산과 업종전문화를 자율적으로 추진해 나가면서 중소기업과의 협력강화,기업인 의식개혁운동 등 다각적인 경영혁신 운동을 전개하고 설비투자의 조기집행 및 확대를 꾀하고 있다.
그러나 재계의 속사정과 속마음은 이같은 가시적인 움직임과는 상당히 다른 것 같다.
적극적으로 활기있게 나서지 못하고 아직은 「한번해보는 선」에서 관망하려는 자세가 지배적인 것이다.
최근 대기업 그룹들이 경쟁적으로 발표하고 있는 그룹정비 방안을 보면 대부분 소유분산과 관련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고 업종전문화라 해봐야 그룹내 비중이 낮은 기업 몇개가 매각 또는 합병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 30대그룹이 계획하고 있는 설비투자는 모두 15조4천7백여억원이나 일부를 제외하고는 연초계획에서 거의 늘어난게 없으며 그나마 조기집행도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마음은 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이같은 현상은 여러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빚어진다고 전문가들은 보고있다.
우선 아직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갖고있는 의구심이다.
너무 여론에 좌우되지 않는가,정부 부처간 서로 손발이 안맞아 정책방향이 틀어질 수 있지 않는가,경기활성화 이후 재벌규제 시도가 있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크다는 것이다.
투자부진에 대해서는 경제 내·외부적으로 불확실한 게 많다는 점도 지적된다.
중단없는 개혁 및 사정방침이 수시로 발표되는 예측불허의 상황인데다 우리의 산업체질이 지난 수년간 약화돼 구조적인 위기에 직면한 만큼 기존의 생산시설을 늘리는데 한계가 있으며 장기간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기업의 내부유보 여력이 약화되기도 했다는 것이다.<김동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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