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희망 이야기] 시각장애인 돕는 보영여고 18총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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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들어와 얘들아. 방학이고 날씨도 추운데 뭐하러 또 왔어." 지난 7일 오전 10시40분 경기도 동두천시 생연1동 보영여고 인근의 '시각장애인 재활작업장', 6평 남짓한 방안에서 쇼핑백을 만들던 50대 시각장애인 네명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발랄한 여고생 3명이 작업장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방과후나 방학을 이용해 10개월째 시각장애인들의 손발이 돼주고 있는 보영여고 '천사 18총사'의 일원인 2학년 정영란(18).유진희(18).박미정(18)양이다.

학생들은 방 한쪽에 쌓여 있는 쇼핑백과 끈을 한묶음씩 집어들고는 익숙한 손길로 쇼핑백 구멍에 끈을 넣고 매듭을 짓는다. "끈 좀 가져다줄래" "다 만든 쇼핑백은 구석에 줄 맞춰 놓아주렴" 등의 심부름도 날렵하게 한다.

1급 시각장애인 김영애(53.여)씨는 "학생들이 방문하는 날이면 작업량이 평소의 두배로 늘어나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면서 "착한 학생들의 따뜻한 마음에 세상이 더욱 밝게 보인다"고 말했다.

보영여고 학생들이 자원봉사에 나선 것은 2001년 3월 학교에 봉사활동반이 생기면서다. 유영찬(40)교사는 "당시 3학년생 16명이 나선 것은 대학 진학에 가산점을 받기 위해서였지만 봉사를 계속하면서 태도가 달라졌다"고 설명한다. 어려운 이웃의 고통을 느끼고, 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학생들이 보람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 유교사는 "지난해에는 봉사활동을 2년간 했던 학생이 앞으로 장애인을 돕는 일에 헌신하기로 마음먹고 대진대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이후 보영여고에는 아름다운 경험을 전해들은 학생들이 매년 10여명씩 봉사활동반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현재 18명인 반원들은 시각장애인 재활작업장과 함께 앞을 못 보는 육순의 할머니 집 두곳 등 모두 세곳을 매주 한차례씩 찾아 평균 3~4시간씩 시각장애인들을 돕고 있다.

동두천=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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