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전화번호 어디갔나 했더니”/노재현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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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쌍쌍번호」 「울타리 번호」 「중복번호」 「천배수번호」 「백배수번호」….
9일 열린 국회 교통체신위원회에서 초선의 이윤수의원(민주·성남 수정)은 『체신부와 한국통신의 간부들이 좋은 전화번호를 독차지하고 있다』고 폭로해 주목을 끌었다. 이 의원은 또 『한국통신은 쉽게 기억될 수 있는 「좋은 번호」를 많게는 50만원까지 받고 암거래하거나 정·관계 고위층에 상납해 온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좋은 번호중 1122나 3344 같은 번호(국번호제외)는 「쌍쌍번호」,3443은 「울타리번호」,1212는 「중복번호」,2000는 「천배수 번호」,6200은 「백배수 번호」로 불린다. 또 5678 「연결번호」,6742는 「구구단번호(6×7=42)」라고 통칭된다.
0000번이나 7788같이 공익을 목적으로 한 번호를 제외한 모든 전화번호는 미리 컴퓨터에 입력돼 순서대로 전화가입 신청자에게 제공하게끔 돼 있다. 다만 이삿짐센터가 선호하는 2424는 희망자를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배정된다. 이 의원은 『전화국에서 좋은 번호를 처음부터 입력대상에서 제외하거나 공중전화용으로 분류해 일반인에게 제공되지 않게 조작해 놓았다가 번호암거래나 상납에 이용한 의혹이 짙다』고 주장했다.
전화국직원의 제보를 근거로 서울시내 50개 전화국을 「발로 뛰어」 조사한 결과 한국통신의 경우 본부 부장급이상 임직원 6백21명중 좋은 자택 전화번호를 갖고 있는 사람은 무려 4백14명(66.6%)이나 된다고 이 의원은 주장했다. 또 체신부도 본부장이상 직원 2백71명중 53.6%인 1백48명이 좋은 번호를 갖고 있다고 폭로했다. 이 의원은 두 기관의 최고 책임자인 체신부장관(9977)과 통신공사 이사장(8800)은 좋은 번호중 가장 인기있는 쌍쌍번호를 갖고 있다는 지적을 덧붙였다.
『한 국번당 5백개의 「좋은 번호」가 매매된다고 볼 때 거래가격을 개당 10만원으로 잡아도 서울시내 7백15개 국번을 합하면 무려 3백50억원이란 자금이 조성되며,전국적으로는 8백억∼9백억원의 자금을 조성할 수 있다』고 이 의원은 주장했다. 그는 『체신부·한국통신 직원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좋은 번호를 배정받았다면 즉각 일반국민에게 돌려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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