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내전의 불길 2백만 명 아사 "위기"|군벌이 막아선 소말리아 평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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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금세기 최대 「아프리카의 비극」으로 표현되는 소말리아 사태. 기아와 내전으로 점철된 이 나라를 유엔평화유지활동(UNOS0M Ⅱ)으로 구해낼 수 있을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오랜 내전으로 지난 한해에만 35만여 명이 사망한 소말리아는 전체인구 6백만 명 중 2백만 명 이상이 아사 위기에 놓인 형극의 땅이다.
소말리아는 동쪽으로 2천㎞ 해안선을 따라 인도양에 면해 있고, 북쪽으로도 1천㎞나 홍해와 수에즈운하에 이르는 아덴만에 접한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냉전시대 미소의 대표적 각축장이었다.
「아프리카의 뿔」이라 불리는 소말리아는 60년 아덴만 연안지역인 북부와 인도양과 접하고 있는 남부지역이 각각 영국과 이탈리아 보호령으로부터 독립, 처음으로 통일국가인 소말리아 공화국이 탄생했다. 소말리아는 아프리카에서는 극히 드물게 햄족계 「소말리족」만의 단일민족 국가로 소말리족은 6개의 씨족(clan)으로 나뉘고, 다시 그 밑에 여러 개의 분가(subclan)라는 혈연관계로 형성되어 있다.
지난 91년부터 씨족 및 분가를 기반으로 하는 무장세력들이 할거, 정부 주도권을 어느 씨족이 잡을 것인가를 놓고 다투기 시작하면서 소말리아는 무정부 상태에 빠졌다.
이에 앞서 소말리아 내전의 씨앗은 69년 군의 무혈 쿠데타로 집권한 모하메드 시하드 바레소장이 실권을 장악하면서 뿌려졌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바레 대통령은 자기 출신부족인 다로드족을 중용, 다른 씨족으로부터 반발을사 바레 대통령의 독재를 무너뜨리려는 무장세력의 반란에 휩싸이게 된다.
88년5월 북부 이사크족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반정부 게릴라 소말리아 국민운동(SNM)이 무장봉기의 기치를 내건데 이어 하위에족 중심의 통일소말리아회의(USC)와 오가덴족의 소말리아애국운동(SPM)등이 반정부 공동작전을 벌여 91년1월 USC가 수도 모가디슈를 장악, 바레 정권을 타도했다.

<구호작업 제자리>
그 후 잠정대통령에 USC의 알리 마하디 모하메드가 취임하자 SNM은 그가 하위에 씨족만 우대한다며 반발, 91년6월 북부지역에 독립국 소말리랜드 공화국을 수립했다.
수도에서는 모하메드 잠정대통령과와 USC의장인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 장군 계열의 부대가 교전, 그 해 11월 모하메드파가 패해 수도를 탈출한 이후 소말리아 전역에서 내전이 더욱 격화된다.
소말리아 내전의 당사자인 모하메드 잠정대통령과 아이디드 장군은 92년3월 유엔의 중재로 정전협정에 조인하지만 전투가 계속되자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4월24일 소말리아 평화유지를 위한 유엔 소말리아활동(UNOSOM I)의 설치를 결의, 7월에 정전 감시팀이 소말리아에 파견됐다.
그러나 계속되는 내전 속에 중앙정부를 타도하기 전까지만 해도 민심을 얻기 위해 민폐를 끼치지 않았던 반군들은 군벌로 탈바꿈했다.
무장군벌들의 습격으로 구호물자의 80%가 약탈당해 구호활동은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지난해 7월에는 영국 어린이자선단체가 운영하던 병원이 공격받았다.
11월에는 소말리아 난민 3천여 명을 태운 화물선 한 척이 인도양을 떠돌며 수백 명이 죽어 가는 상황이 빚어지자 12월3일 유엔안보리는 인도적 원조의 길을 열 목적으로 다국적군 파견을 결의했다.
파견부대는 미군을 중심으로 프랑스·이탈리아군 등 2만8천명이며 작전은 「희망회복」 으로 이름 붙여졌다.

<24국 2만명 파견>
희망회복 작전에 투입된 다국적군은 같은 달 9일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 상륙, 무장세력의 저항 없이 공항·항만 등을 장악한 뒤, 상륙 20일만에 신속하게 소말리아 주요 지역을 장악, 본격적인 구호활동에 나섰다.
소말리아 정국이 안정을 회복하자 유엔은 올해 1월 유엔 주최로 통일을 위한 14개 무장세력 평화회의를 아디스아바바에서 개최, 즉각 정전과 무장해제에 동의하는 한편 3월 소말리아 15개 정파가 휴전협정에 서명하고 잠정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화해회의를 개최키로 합의했다. 이와 함께, 유엔은 3월26일 안보리에서 군인2만8천명을 포함해 약3만 명의 대규모 UNOSOM Ⅱ를 보내 다국적군으로부터 작전지휘권을 인수, 활동에 들어갈 것을 결의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29일 소말리아 현지로 출발한 한국군을 포함해 24개국 2만2백10명의 병력이 유엔평화유지 활동에 나서고 있다.
소말리아 사태는 유엔 등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최악의 국면을 벗어났으나 내전은 소말리아 군벌과 유엔군의 대립 양상으로 바뀌었다.
지난달 5일 소말리아 최대 군벌인 아이디드파는 유엔군에 대한 기습공격을 감행, 파키스탄군 23명을 살해했다.
아이디드 군벌은 수도모가디슈의 80%를 장악하고 있고 남부지방에 근거지를 두고 있으며 그동안 희망회복 작전에 협조적이었다. 그러나 UNOSOM Ⅱ의 활동이 개시된 이후 소말리아 문제는 소말리아인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유엔군은 철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권위에 손상을 입은 유엔군은 아이디드파의 거점에 대한 공습과 무장해제에 나서는 한편 17일에는 아이디드에 대한 체포령을 내렸다.
이 같은 유엔군의 작전과정에서 지난 13일 유엔군소속 파키스탄군이 유엔군의 공습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 20명이 사망하고 50명이 부상하는 등 무고한 주민들 희생이 잇따라 현지의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다.

<게릴라전도 준비>
소말리아인들은 유엔군을 환영하던 입장에서 외세개입 반대를 외치고 있고 이 같은 분위기를 이용, 군벌들은 근거지를 모가디슈 외곽으로 옮겨 장기적인 게릴라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 유엔평화유지 활동 예산의 절반 이상인 연간 15억 달러의 엄청난 비용과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 유엔사무총장이 취임 후 소말리아 사태를 제3세계 문제 해결의 본보기로 삼겠다고 강조하는 등 의욕적인 출발로 시작된 소말리아 유엔평화유지 활동이 현지주민들과 다양한 군벌의 반발이라는 장벽에 막혀있는 셈이다. <고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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