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분리」 철폐/공무발판 마련/남아공 자유선거 합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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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3백50년 백인통치 종식/일부 “연방제” 주장 새불씨
흑백 정당을 망라한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협상 대표들이 내년 4월27일 모든 인종이 참여하는 사상 최초의 자유선거를 실시키로 2일 합의함에 따라 이 나라 모든 갈등의 근원인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의 공식 철폐를 향한 발판을 마련했다.
자유총선 일정의 합의는 지난 3백50년동안 남아공 총인구의 7분의 1에 불과한 5백만 백인들의 소수통치를 종식시키고 흑백인을 포함,다인종이 참여하는 민주주의시대로 진입하는 거보를 내딛는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남아공의 26개 흑백정당 협상 대표들의 회의인 민주남아공회의(CODESA)는 이날 줄루족을 주축으로 한 인카타 자유당(IFP)을 비롯,극우보수당(CP) 등 6개 단체 대표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4일 잠정합의한 총선일정을 확정했다.
이들 6개 흑백인 우익정당들은 그동안 협상과정에서 선거일정 확정에 앞서 연방제도의 도입을 통해 자신들의 자치권 보장을 요구해온 반면 아프리카 민족회의(ANC)는 강력한 중앙집권제 국가를 주장,줄곧 대립해왔다.
따라서 이번 총선일정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합의과정에서 이같은 흑백 우익정당들의 입장이 일방적으로 무시됐기 때문에 총선이후의 최종 헌법을 채택할 때까지 과도헌법을 기초하게 될 협상대표로 구성되는 소관위원회에서 갈등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미국을 방문중인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 대통령의 1일 연방제 도입 지지발언은 향후 남아공 정치일정에서 이 문제가 태풍의 눈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또 이번 협상에서 협상 대표들이 기초한 과도헌법을 총선후 제헌의회에서 손질해 최종 헌법을 채택하도록 정했기 때문에 제정당의 향후 이해관계가 얽힌 내년 4월 총선의 선거운동이 시작될 경우 유혈사태를 더욱 격화시킬 것이라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한편 남아공 극우단체들은 최근 민주화 속도를 늦추도록 압력을 행사하기 위해 다각적인 시민불복종운동을 전개해왔으며 지난달 25일 극우파 백인 수백명이 장갑차를 몰고 흑백 민주화 협상장에 난입한 사건은 앞으로 총선까지의 정치일정이 험난한 길임을 예고해주었다.
모든 인종이 참여하는 선거가 내년에 실시될 경우 ANC가 제1당이 될 것은 거의 확실하고 데 클레르크 대통령의 국민당이 제2당을 목표로 뛰고 있으며 임시정부는 모두 3∼4개 정당이 참여하게 될 연립정부의 형태를 띨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남아공이 이번 정치일정 합의를 서둘러 하게 된 배경에는 89년 데 클레르크 대통령 취임이후 각국의 경제제재 조치와 맞물려 매년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고 흑인실업률이 40%에 이르는 등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경제상황으론 더 이상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유지가 어렵다는 데 클레르크 정부의 판단에 따른 유화정책이 계기가 됐다.<고창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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