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더불어 사는 삶」깨닫는 지름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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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배워서 남주자.』
베풀며 더불어 사는 삶을 어린이들 가슴깊이 심어주고자 애쓰는 김익승 교사(서울 신명국교)가 늘 급훈으로 삼으면서 매학기 펴내는 학급문집의 제목이다. 나름의 이 같은 교육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김 교사가 남달리 힘쓰는 것이 일기 쓰기 지도. 지난 75년 교단에 선 이래 일기 쓰기만큼 좋은 인간 교육 방법은 흔치않다는 믿음으로 정성을 기울인다. 어린이들이 매일 일기 쓰는 습관을 몸에 익히도록 하기 위해 쉬는 시간을 틈내 가능하면 모든 어린이와 한명씩 무릎을 맞대고 앉아 함께 일기를 보며 짧은 대화를 나누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을 당했다니 정말 억울했겠구나.』
『그것 참 좋은 생각인데.』
담임선생님의 격려와 칭찬한 마디라든가 잘 쓴 부분에 색연필로 밑줄 한번 그어주는 정도로도 금세 얼굴이 환해지는 어린이들의 터 없는 표정이 김 교사로 하여금 이 쉽지 않은 일을 거르지 못하게 한다. 정직하고 당당한 글을 거듭 강조하노라면 어느새 「상타기 위한 예쁜 글」이 아니라 꾸밈없이 솔직한 글을 쓰게되는 젓을 확인하는 보람도 크다.
집에서 꾸중듣거나 친구와 싸운 일등 별로 자랑스럽지 않은 점들 뿐 아니라 그 일기를 보게될 담임선생님에 대한 나름의 불평불만까지 스스럼없이 털어놓는 아이들을 보면 오히려 흐뭇해진다. 더구나 글감을 찾기 힘들어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부모님 발을 씻어드린다든가, 땀 흘리고 난 느낌을 적어보도록 하면 어린이들은 가족들과 달리기를 한다든가 열심히 줄넘기를 해보기 때문에 일기지도는 여러모로 효과가 크다.
이렇게 쓴 일기들 중 일부는 매학기말 방학을 앞두고『배워서 남주자』라는 학급문집으로 묶여 나온다. 어린이들이 글쓰는 재미를 맛보도록 하기 위해 별도의 상자에다 크고 작은 종이들을 잘라놓고 언제라도 자신이 쓰고싶은 글을 동시·독서감상문·편지글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쓰게 해 이를 학급문고에 함께 싣는다. 어린이들은 폐품을 모아 파는 등으로 문집 만드는 비용을 보태려 애쓰지만 어차피 10여만원 중 일부는 김 교사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보태게 마련. 그렇지만 이 같은 문집을 함께 만들며 자란 제자들이 고등학생이 돼서도 서로우정을 나누며 꿋꿋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결코 이 일을 포기할 수 없다.
『일기를 포함한 글쓰기교육을 위해 나보다 훨씬 더 땀 흘리는 교사들이 전국에 수없이 많습니다. 이 교사들이 교내 복사기나 인쇄시설이라도 이용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준다면 조금이나마 그 수고와 비용을 덜 수 있겠지요.』
좀더 나은 교육을 위해서는 어린이들의 살아있는 생각과 느낌이 담긴 학급문집들이 웬만한 교육연구 논문들 보다 한결 소중한 참고자료가 된다는 게 김 교사의 솔직한 심정이다.<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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