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만에『빨갱이』누명 벗었다-김복련 할머니 K-1TV「신문고」코너서 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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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6·25때 패주하는 국군을 숨겨주었다가 빨갱이로 몰려 23년간 옥살이를 한 칠순 할머니가 TV프로를 통해 43년만에 숨겨주었던 국군 패잔병을 극적으로 상봉,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게 됐다.
올해 75세인 김복련 할머니는 6·25 발발 이틀후인 27일 밤 자신의 집으로 숨어든 당시 23세의 국군패잔병 김현호씨(64·전남 장성군 북이면 사거리 665의29)를 숨겨주고 남자 옷을 구해 피신시켰는데 나중에 군인에게 준 남자 옷의 주인이 집을 차지할 욕심으로 빨갱이로 고발하는 바람에 법정에서 무기징역을 받고 23년간 옥살이를 하게 됐다는 것.
74년 병 보석으로 풀려난 다음에도 주변으로부터 빨갱이로 외면 당해 어려운 생활을 해 온 김 할머니는 취조 받는 과정에서 다섯 살 짜리 아들도 잃어버리고 지금까지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했다고 한다.
김 할머니가 43년만에 김현호씨를 만나게 된 것은 지난 20일 방송된 KBS-1TV 『열린사회 시민광장』의 시민민원호소 코너인 「TV 신문고」를 통해서였다.
김 할머니는 23년간의 옥살이가 너무 억울해 지금이라도 누명을 벗어야겠다는 생각으로 「TV신문고」에 김씨를 찾는 방송을 부탁했었다는 것.
TV에서 할머니의 억울한 사연을 듣고 전남 장성에서 곧바로 서울로 올라온 김씨가 22일 낮1시30분 KBS에 나타났을 때 김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얼굴도 기억나지 않고 성함도 알 수 없는 분이 이렇게 나타나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어디에 계시다 이제 나타났느냐』며 눈물을 흘렸다.
당시 용산구 서빙고 동에 있던 중앙위중대에서 기관총수로 있던 김씨는 『동두천으로 출동명령을 받고 미아리 쪽으로 가다 적의 공격을 받고 소대가 뿔뿔이 흩어져 할머니 집으로 숨어들게 됐다』며 『할머니는 남은 꽁보리밥과 남자 옷을 구해 다 주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씨는 『생명의 은인인 할머니를 찾지 못해 그 동안 빚을 지고 있는 마음으로 살았다』며 할머니의 불행한 처지에 대해 마음 아파했다.
전쟁 중 남편이 사망해 면회 올 사람도 없이 외롭게 지냈던 김 할머니는 출감직후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최용주 노인과 재혼,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다.
김씨의 증언으로 김 할머니의 억울한 누명은 벗을 수 있게됐으나 23년간의 억울한 감옥생활에 대한 보상은 시효가 지난 사건이라 기대하기 힘든 상태.
KBS는 김 할머니와 김씨의 이야기를 조만간 적절한 프로에서 소개할 계획이다.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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