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계 “기세 주춤”… 민정·공화계 “생기”/민자 미묘한 기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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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잇단 실책에 “무뎌진 YS신임”/민주계/“경험풍부” 앞세워 목소리 높여/민정·공화계
민자당내 민주계의 독주에 브레이크가 걸리고 있다. 김영삼대통령의 출범으로 실세그룹이 된 민주계가 인물난과 경륜·경험부족에서 오는 잇따른 실착에다 계파내부의 은근한 힘겨루기 진통을 겪고있기 때문이다.
민주계의 허점이 곳곳에서 노출되자 구성원 개개인의 경험과 행정능력면에서 상대적으로 우수한 민정계가 초반의 수세에서 서서히 고개를 들며 야릇한 미소마저 짓고있다.
○황 총장후 “이상”
○…민정·민주·공화계가 각각 5·3·2의 지분을 투자해 탄생시킨 민자당에서 유일하게 국정참여 경험이 없는 민주계는 30% 지분으로 경영권(?)을 차지했다.
민주계는 세력판도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김 대통령의 측근 최형우의원이 사무총장자리에 있을때까지는 그런대로 일사불란한 모습으로 허점을 별로 노출시키지 않았었다.
그러나 최 총장이 입시부정사건과 관련,사퇴하고 황명수의원이 사무총장이 된뒤부터 민주계의 입지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동안 최 총장의 기세에 주눅이 들었던 민정계는 황 총장이 서열존중을 강조하며 김종필대표를 깎듯이 예우하는 것으로 자신의 목청을 낮추자 다소 기지개를 펴는 모습이었다. 남북문제·학원문제 등에서 민주계를 몰아세울 정도로 분위시가 바뀐 것이다.
○…민주계 실세들끼리의 미묘한 갈등은 6월11일 치러진 명주­양양 등 3개 보궐선거를 전후해 확연해졌다.
당시 민주계의 원로격인 김명윤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수차례나 명주­양양에 다녀온 황 총장은 선거패배 이전부터 주위사람들에게 『공천이 잘못된 것 같다』며 김 후보의 공천을 주장한 쪽을 향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었다. 김 후보 공천엔 김덕용 정무1장관이 가장 앞장섰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세끼리도 갈등
계보내 다른 목소리는 이후 사고지구당 조직책 인선과정에서 더욱 커지고 있다.
황 총장은 황병태 전 의원이 주중대사로 나가는 바람에 비게 된 서울 강남갑 지구당 위원장자리를 서상목의원(전국구)에게 주어야 한다고 거의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은 가신그룹들 사이에 황 전 의원이 추천하는 사람에게 주기로 1차 결론이 났었던 지역으로 이들이 발끈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처럼 수적으로 얼마 안되는 민주계가 각자의 입장과 향후 정치적 계산에 따라 힘겨루기를 하는 가운데 민주계 실세들도 최근 들어 다양한 이유로 권위가 약화되고 있다.
먼저 황 총장은 공무원 자가용출퇴근 금지추진 발언으로,강재삼 제2정책조정실장은 용산 전쟁기념관을 박물관겸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추진하다 김 대통령의 백지화지시로 각각 스타일만 구겨버렸다.
사태가 이쯤되자 그동안 민주계의 독주에 별다는 제동을 걸지않던 김종필대표가 19일 『당론으로 확정되지 않은것을 대외적으로 발표하면 국민들에게 혼선만 준다』고 당직자들을 질책했다.
○온건 보수에 고무
김 대표의 이같은 질책은 결국 그동안 풍부한 행정경험을 계파최대의 자랑으로 생각하며 당내 정책부분의 민주계 실세들을 마치 사격장에서 불발탄을 갖고노는 어린이를 보는 시각으로 불안하게 쳐다봐온 민정계의 속마음을 대변해 준 셈이다.
이같은 민주계의 시행착오와 함께 당내에서는 『민주계 실세들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이 예전같지 않다』라는 소문도 있어 그동안 숨을 죽이고 있던 다른 계파 의원들의 눈에 생기가 돌고있다.
심지어 청와대측이 황 총장을 제치고 가급적 당무를 민정계인 김영구 원내총무와 협의하려 한다느니,김덕용장관이 청와대내 김 대통령 측근들로부터 견제를 당하고 있다는 등의 소문이 나돌아 사실여부를 떠나 민주계의 발목을 잡고있다.
민정·공화계측은 최근의 학원문제·노사문제·남북문제에서 김 대통령이 온건보수노선쪽을 견지했다는 사실에 특히 주목하며 매우 고무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민정계의 한 중진의원은 『김 대통령이 1년정도는 민주계를 중심으로 개혁을 추진하겠지만 그뒤에는 결코 민정·공화계를 버려두지 않을것』이라고 전망한 것도 이즈음에 다시 음미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말은 단순한 과거청산 작업에는 민정·공화계가 참여할 명분이 없지만 그뒤의 당운영에는 소수의 민주계로는 인적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신들에게도 반드시 기회가 올것이라는 기대를 담고있다.
일부 민정계의원들은 내년으로 예정된 정기전당대회에서 어느정도 역할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보다 적극적인 「생각」을 주고받기도 해 향후 민자당내 각 계파간 물밑움직임이 주목된다.<이상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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