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투자보다 재테크 열올려/고리의 금전신탁 급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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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올들어 3조7천억 늘어 자금흐름 왜곡
금리를 낮추고 정책금융·재정집행을 통해 투자를 부추겨야겠다는 새 정부의 경제정책을 시중자금의 흐름이 크게 비껴가고 있다. 시장이 정부의 뜻대로 가주지 않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기업들이 신규투자를 미루는 가운데 여유자금이 은행빚 갚는데 쓰이기는 커녕 돈이 최소한 6개월이나 잠기는 기업금전신탁에 몰려 그 잔고가 최근 11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1년동안 3천5백78억원이 늘어났던 기업금전신탁은 올들어선 매달 평균 지난해 1년 증가분의 두배에 가까운 6천7백51억원씩 늘어나 지난 15일까지 총 3조7천1백33억원이나 증가했다. 특히 예년 같았으면 4∼6월에 기업의 자금수요가 크게 일어났는데도 올해는 기업들이 예금을 빼다 쓰기는 커녕 한달평균 7천8백47억원씩의 기업금전신탁을 더 저축했다.
1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기업이 6개월동안 맡기는 여유자금을 은행에서 고수익 유가증권 등에 운용해 그 실적에 따라 배당해주는 단기성 신탁상품인 기업금전신탁예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올들어 지난 기업금전신탁 잔고는 신경제 1백일계획에 따른 중소기업 지원자금(1조2천억원)의 세배가 넘는다.
한은관계자는 『예년같으면 4∼5월에 자금수요가 본격적으로 일고 비수기라지만 6월에도 꾸준히 자금수요가 있는 편인데 올해는 1월에만 기업금전신탁 잔액이 줄어들었을 뿐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엔고와 중국특수 등에 따른 일부 상품의 수출호조와 일부 경제지표상 회복조짐이 있지만 아직까진 경기가 나아지는 움직임이 없어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금융계는 두차례에 걸친 규제금리인하로 은행의 대출금리(일반대출 연 8.5∼10%,당좌대출 9∼11%)와 회사채 발행금리(연 11%)가 기업금전신탁 수익률(1월말 12.46%,5월말 11.51%)보다 낮아진 틈을 타 기업들이 은행대출금이나 회사채발행 등으로 확보한 여유자금을 고리의 금융자산으로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업금전신탁을 6개월안에 중도해지할 경우 수익률은 만기때보다 낮아지지만 언제든지 빼내 쓸 수 있어 대기업은 물론 일부 중소기업도 돈을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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