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간줄 알았는데 전성기 구위 "싱싱"|각 구단 "선동열 기피증"재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선동렬 공포증」-.
올 시즌 들어 해태 선동열이 전성기 때의 구위를 되찾으면서 승승장구하자 7개 구단 사이에 그 동안 잠잠했던「선동열 콤플렉스」가 재발하고 있다.
11일 해태를 잠실 홈 그라운드로 불러들인 OB의 경우 특히 「선동열 공포증」이 두드러졌다.
결론부터 말하면 OB는 선동열이 등판 시늉만 하자이내 경기를 포기, 모처럼 명 승부를 기대하던 2만여 팬들을 실망시켰다. 특히 이날 「OB의 항복」은 최고 사령관인 윤동균 감독이 자청하다시피 한 것이다.
올 들어 해태에 3연패 한 OB는 이날 강병규를 선발로 내세워 초반부터 일전불사의 의지를 다졌다.
반면 해태는 4∼5번째 선발투수인 문희수를 내 놓고 3연전 첫 경기이니「져도 그만」이라는 느긋한 자세였다.
팀타율 3위(0.264)인 OB는 경기 초반 문의 볼을 자신 있게 후려쳤으나 2개의 안타성 타구가 해태유격수 이종범의 수비에 걸리는 등 불운이 계속됐다.
OB는 이 같은 징크스에 발목이 잡힌 듯 좀처럼 공격의 실마리를 풀지 못한 채 문의 투구에 휘말려 갔다.
해태는 이종범의 좋은 수비로 경기를 주도하며 3회 초 8번 이건열의 좌월 솔로홈런으로 기선을 잡아 1-0으로 앞서 나갔다.
승부의 고비가 된 8회초.
해태는 1사후 이종범의 2루타로 주자 2루의 득점찬스를 맞았다.
바로 이때 해태 김응룡 감독은 선동열에게 불펜에서 몸을 풀도록 지시, OB벤치를 자극했다.
한 점만 더 내면 선동열을 투입, 승리를 다지겠다는 시위였다.
곁눈으로 선의 모습을 확인한 OB투수 강병규도 몸이 달기는 마찬가지.
1-0의 상황에서 역전까지 바라본 강으로선 선의 존재가 싫기만 했다.
해태 1번 이순철을 유격수땅볼로 처리한 강은 빨리 위기를 넘기려는 조급한 마음이 앞서면서 해태 신인 김훈에게 한복판 직구를 던지다 1타점 적시안타를 얻어맞고 말았다. 선동열을 지나치게 의식, 추가점을 주지 않으려고 서두르다 일격을 당한 것이다.
망연자실한 강은 이후 투수보크를 범했고 『승부는 끝났다』고 판단한 윤동균 감독은 역투하던 강을 강판 시켜 버렸다. 윤 감독은 선동열이 버티고 있는 상태에서 2점차를 뒤집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차라리 에이스를 아끼자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최근 들어 해태가 독주태세를 갖추면서 나머지 팀들에서 해태 기피현상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다른 팀 감독들은 선동열을 의식, 초반부터 승부를 서두르는 등 조급증마저 보이고 있다.
『선이 등판하기 전에 점수 차를 벌리지 못하면 진다』는 강박관념 때문인 것이다.
전 LG감독 백인천씨는 『선동열이 한국최고의 투수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같은 완벽한 투수를 공략하기 위해선 그가 실투하는 기회를 잡아 총공격을 퍼부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투수라도 한 두 차례 실투할 수밖에 없는데 그때를 노리는 것이 가장 확실한 선동열 공략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7개 구단 감독들이 음미해 볼만한 말이다. <권오중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