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계특혜」의혹 큰 민자 물갈이/노재현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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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자당은 위원장의 공직취임 등으로 주인을 잃은 13개 사고지구당의 조직책 신청자 명단을 8일 발표했다. 지난 1일부터 닷새동안 79명의 정치지망생이 서류를 갖추어 신청한 것이다. 전진의원·장차관·교수·변호사·기업인·정당인·지방의원에 이르기까지 제제다사가 몰려들었다.
그런데 평균 6대1을 넘는 경쟁률속에 유독 신정치 1번지라는 서울 강남갑 지역은 신청자 한명뿐이어서 의아했다. 그는 이지역구의 당원이자 당중앙상무위 경제과학 분과위원장인 김웅길씨다.
원래 이곳은 민자당의 현역 전국구의원만도 4명이나 거론되던 지역이었다. 이들중 3명은 이런저런 사유를 들어가며 지레 신청을 포기했다. 당내 경제통인 서상목의원만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비공개」로 황명수 사무총장에게 직접 조직책신청을 했다. 그러니까 강남갑은 모두 2명이 신청한 셈이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서 의원은 어째서 당당하게 공개신청절차를 밟지 않았는지 당내에서는 짐작못하는 사람이 없다. 민주계 실세중 한명으로 꼽히는 황병태 주중국대사는 이 지역의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황 대사가 돌아오면 다시 조직책을 맡아 다음 공천을 받길로 내정됐다는 「설」이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이 때문에 김웅길씨는 황 대사의 대리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다.
당사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황 대사를 모르는 처지도 아닌데 당직자인 입장에서 그와 공개적으로 경쟁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어쨌든 당명에 따르겠다.』(서상목의원)
『지구당이 비었길래 순수한 마음으로 신청했을 뿐이다. 황 대사가 밀약했다는 추측은 당치도 않다. 나는 15대에 출마할 것이다.』(김웅길씨)
『서 의원이 당에서 결정하는대로 따르겠다며 나에게 직접 신청했다. 공식경로는 거치지 않았다.』(황명수총장)
공개신청한 김씨는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고,서 의원은 「웃분」의 최종결정에 은근히 기대를 거는 눈치다. 공개심사 작업의 책임자인 황 총장은 절차를 무시한 신청을 어정쩡하게 받아들여 기강해이를 선도했다. 이쯤되면 최근 조직책 신청대상에서 자신의 지역구(부여)만 제외했다가 아름답지 못한 구설수에 오른 김종필 당대표의 처사는 차라리 솔직했다고 할 것이다. 민자당내에서는 지난 보궐선거 후보신청때도 일찌감치 내정설이 돌았던 손학규·김명윤씨 등이 결국 공천을 따내 「설」의 신통함을 입증한 전례가 있다. 물갈이가 기준없이 자기편에 (민주계) 특혜를 주는 수단이 되고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쌓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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