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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스파이를 막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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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얼마 전 자동차 회사 전·현직 직원이 22조원의 피해를 줄 수 있는 신차 조립기술을 중국 기업에 넘기려다 적발됐다. 최근에는 선박 건조 기술을 중국으로 유출하려던 전직 조선업체 직원이 검거됐다. 기술이 유출됐다면 향후 5년간 35조원 상당의 피해가 날 뻔했다고 한다. 평면디스플레이·반도체 분야에서도 기술유출이 시도되기도 했다. 국가정보원의 산업기술 해외 불법유출 적발 건수를 보면 2002년 5건, 2003년 6건이던 것이 2004년 26건, 2005년 29건, 2006년 31건으로 크게 증가하고 있다. 대상국은 절반 이상이 중국이다.

 산업스파이란 기업이 보유한 제조법·영업비밀·기술·경영정보 등을 부정한 방법으로 입수해 다른 회사에 팔아 넘겨 이익을 취하는 범죄자다. 단 한 번의 범죄행위로 매우 큰 피해가 발생한다. 이들의 행동은 은밀해 적발하기 힘들다. 산업스파이 행위는 보통 외부인보다 동료직원, 회사 내 기술인력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우리 기업 중 보안관리 조직과 기업보안 솔루션을 제대로 가동하는 기업은 극소수다. 보안관리 비용을 줄이려다 전 재산을 날릴 위험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화에 따라 기업의 정보는 전산화돼 집중 관리된다. 기업의 효율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했지만 한 번에 모든 것을 도둑맞을 가능성도 커졌다. 과거 커다란 창고를 가득 채울 만큼의 정보가 불과 몇 장의 시디(CD)에 기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적발된 경우도 초대형 유조선, LNG선 등 무려 69척의 선박에 대한 설계도와 조선소 건설도면 등 선박 건조에 필요한 거의 모든 정보가 외장 하드디스크 하나에 복사돼 넘어갈 뻔했다.

 세계경제가 글로벌화하면서 기업들은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핵심기술의 개발에 천문학적인 연구개발비를 쏟아 붓는다. 상품화를 위해서도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출한다. 따라서 어떤 기업이 가진 핵심 노하우는 수십 년에 걸친 엄청난 가치를 가진 자산이다. 이것이 다른 경쟁사로 넘어가면 피해 기업은 생존을 위협받는다. 최근 중국 기업은 한국 기업과의 기술격차를 크게 줄였기 때문에 한국 기업의 핵심기술을 얻는다면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일거에 한국 기업을 따라잡을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기업문화는 크게 바뀌었다. 기업이 직원의 미래를 책임져 줄 것이란 기대가 없어졌다. 직원들 간의 인간관계도 삭막해졌고, 회사에 대한 애사심도 희박해졌다. 퇴직 후 살아가야 할 기나긴 여생을 생각하면 정말 캄캄한 세상을 살고 있다. 바로 이런 상황이 기업의 핵심기술·노하우를 접하는 고급인력들을 잠재적인 산업스파이로 만들고 있다. 단 한 번의 범죄행위로 너무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따라서 핵심기술을 원하는 외국 기업들과 자연스레 궁합이 맞는 거래관계가 형성된다.

 앞으로도 산업스파이의 준동은 점차 심해질 수밖에 없다. 이들의 기술유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가적 차원에서 기업의 기술유출을 국부유출로 간주하고 체계적인 대응방안을 찾아야 한다. 보안이 허술한 벤처 중소기업들의 보안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기술유출과 관련된 법령을 제대로 구비하고 처벌규정을 강화해 산업스파이가 될 수 있는 유혹을 잠재워야 한다. 기업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보안관리 조직을 상시적으로 가동하고 필요한 경비를 아낌없이 지출해야 한다. 고급 기술인력의 처우개선, 퇴직 직원의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아울러 주요 수출시장에서 지적 재산권에 대한 보호조치를 구축해 불법적인 기술유출에 대한 대응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어차피 핵심기술조차 제품출시, 부품소재의 판매, 경영컨설팅 등을 통해 확산될 수밖에 없으므로 기술혁신의 강도와 속도를 더욱 강화해 외국의 경쟁기업보다 한발 앞서 가야 한다.

박승록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