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부족 정상문턱서 좌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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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아시아역도를 주름잡다 지난 87년9월 돌연 씨름판에 뛰어든 이민우(28·삼익가구).
역도에서는 86서울아시안게임 무제한급 우승 등 당할 적수가 없었으나 씨름판에서는 왠지될듯 될듯 하면서도 정상일보직전에서 분루를 삼키기 일쑤다. 31일 백두급 경기에서도 이민우는 지난 대회 1품 박태일(일양약품)·최성룡(조흥금고) 등을 잇따라 힘으로 제압하고 준결승까지 올라 전 대회장사 김칠규(현대)와 맞섰으나 유리하게 경기를 이끌고도 아깝게 역전패, 아쉬움을 샀다.
이민우는 지난 87년 태릉선수촌을 무단이탈, 샅바를 잡는 과정에서 물의를 일으켜 역도인들로부터는 「변절자」라는 딱지와 함께 역도에서 영구제명된 상태. 현재 이민우는 28세로 민속씨름 최고참이자 팀 주장. 그러나 근파워 면에서는 현역선수 중 최고로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장사다. 체격도 1m91㎝·1백45㎏으로 백두급에서 최장신. 지난 87년 이민우를 스카우트해 현재까지 가르치고 있는 삼익가구 권석조 감독은 『나이는 씨름선수 중 제일 많아도 드는 힘과 체력 및 체격조건은 제일 낫다. 연습할 때 보면 동료선수들보다 수십 ㎏씩 더 든다. 그러나 힘을 모아쓰는 요령이 아직 부족하다』고 안타까워한다. 이는 역도에서 정지된 물체를 상대로 드는 훈련만 하다 씨름에서는 움직이는 사람을 잡아당겨야 하기 때문에 힘의 집중력과 승부근성이 많이 떨어진다는 얘기. 또 기구운동을 오래 해온 탓에 유연성도 다른 선수보다 많이 뒤진다는게 권 감독의 아쉬움이다.
그래서인지 이민우는 힘 위주의 선수에겐 유난히 강하다. 본인도 『김정필·박광덕 등 거구들은 상대하기 오히려 편한데 이번 백두장사에 오른 지현무나 김칠규 등 기술과 노련미를 앞세운 선수는 거북스럽다』고 실토한다. 현재까지 민속씨름에 와서 이민우의 최고성적은 지난 89년 백두급 결승에 올라 2위를 한 것. 통산전적은 1백54전 81승73패로 승률(52·6%)은 상위권 수준.
이민우는 나이를 먹어가는데 따른 정상등정의 불안감이 없진 않지만 외로움이 더욱 두렵다는 것.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초창기만 해도 조언하고 말벗이 돼줄 스승이나 선후배가 씨름계에는 없었기 때문에 역도를 포기한 자책감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가 자주 만나는 선수는 씨름인들이 아니라 전병관·손성국 등 역도 국가대표 후배들이다.
그러나 이민우는 역도에서는 연금혜택 일보직전에 물러났지만 민속씨름에 와서는 돈도 제법 벌어 조그만한 집 한 채도 장만했다. 남은 것은 백두봉에 올라 천하를 한번 호령한 후 예쁜 색시와 결혼하는 것.
그 시기를 권석조 감독과 이민우는 내년께로 잡고 있다. 체력이 워낙 좋아 현역생활은 3∼4년 더할 예정. <신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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