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식 『황금빛 모서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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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황금빛 모서리』는 90년대에 등장한 신진시인 김중식의 처녀시집이다. 이 시집의 인상으로 두드러지게 떠오르는 것은 80년대에서 90년대로 넘어오는 시기를 고통스럽게 통과하는 한 청년의 자화상이다. 그러니까 김중식은 경박한 감수성으로가 아니라 자기 시대를 상처 입으며 나름대로 절실히 사랑한 자로서의 신세대 시인이다. 적어도 그는 자기 시대에 대한 사랑이 고통일지라도 그 고통을 감내할 줄 아는 시인이다.
다소 거친 개괄이 되겠지만 80년대부터 90년대로의 이행기는 사회의 진보에 대한 신념이 비관주의로 기우는 시기라 할 수 있고『황금빛 모서리』는 그 점을 잘 보여준다.『진리는 책상보다는 길거리에, 안보다는 밖에/있었으므로 동굴과 우물에서 나오려 밧줄을/던졌지만 이미 썩어가는 밧줄이었다』나『혹시, 만약, 오리라던 그날은 오지 않았고/세상은 개선의 여지가 없으면서도 지금 세상보다/더 나은 세상 또한 없으리라는 암담함 때문에/내 자신이 변화되길 바랐다』는 시구는 그러한 간략한 예다.
김중식은「시란 자기고백을 통한 의사소통의 양식」이라는 관점에 주로 서있다. 방금 인용한 시구에서도 드러나듯『황금빛 모서리』는 시인의 부끄러운 삶에 대한 자기진술로 가득차 있고 그러한 고백을 통해 자화상을 그려낸다. 가령『니네들은 못해본 단식을 나는 해보았다는 허영/나도 내가 징그러워졌다』에서 보듯이 그의 고백은 자책 혹은 자기반성의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점은 일단 시인으로서 미덕으로 보인다. 자기보다 타인의 허물에 가혹한 것은 아무래도 그의 시심에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그가 자화상을 그리기 위해 빌려온 대표적인 이미지는 갈대와 낙타다. 갈대는 대체로 변혁운동의 대열 혹은 중심에서 이탈한 자, 즉시우리 연대의 참극을 외면하러 땅의 맨 가장자리로 도망쳐』온 존재의 표상으로 나타난다. 낙타는『시인이 애당초 적응하기 힘든 세상』즉 사막과 같은 세상을 헤매는『고통조차 육신의 일부라는 듯/육신의 정상에/고통의 비계살
을 지고』다니는 존재의 표상으로 나타난다. 즉 그는 갈대나 낙타와 같은 이미지를 통해 효과적으로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낸다.
시집을 통해 시인 혹은 시인의 마음을 만나는 것은 시를 읽는 주요한 재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황금빛 모서리』는 자기고백을 통한 자화상이 선명하다는 점에서 시인을 진정으로 만나려는 독자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시집인 셈이다. 하지만 시를 통해 시세계를 구축한다는 면에서 김중식은 아직 신인이다. 자아와 세계의 상관관계를 통해 시세계가 구축된다는 관점에 설 때 그의 세계는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자아와 세계 사이의 균형감각이, 또한 그 균형감각을 떠받치는 치열한 시정신이 요망된다고 하겠다. 【최두석<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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