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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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 14면

독일의 문호 괴테의 말을 빌리자면, 신과 인간과 세계의 비밀이 감춰진 채 남아있는 건 인간이 그것을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십계’ 연작은 영화가 그 비밀을 들려준 드문 사례 중 하나다. TV물로 만들어진 ‘십계’ 중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편을 장편영화로 재편집한 것이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과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이다.

이용철의 ‘DVD 골라드립니다’

거리를 떠돌던 19살 청년 야첵은 비열한 택시운전사를 죽이게 되는데, 신참 변호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형에 처해진다. 그리고 외롭게 살던 19살 청년 토멕은 건너편에 사는 여인을 관찰하다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를 이해하고 그녀에게 다가서고 싶은 마음은 의외의 사건들로 이어진다.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이 개인의 살인과 (사형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공적 살인을 대비시킬 동안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은 관음증이란 소재 너머로 사랑의 탄생 과정에 집중한다. 두 명의 19살 청년은 삶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우리의 모습을 반영한 인물이다. 그들처럼 사랑과 생명의 소중함을 조금씩 깨달아가는 것, 키에슬로프스키는 그 안에 우주의 비밀과 구원의 길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의 목소리를 듣는 건 우리의 몫이다.

DVD는 분위기와 스타일 면에서 사뭇 다른 두 영화를 충실히 재현해 비교 감상하기에 적당하다. 부록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뉘어 수록됐다. 영화평론가 아네트 인스도로프의 영화 소개(12분), 배우·각본가·촬영감독·조감독·동료영화인 등과 나눈 인터뷰(53분), 두 편의 단편영화(21분)는 영화에 대한 친절한 안내서 역할을 다한다. 특히 키에슬로프스키 영화가 마냥 어렵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단편영화 ‘전차’가 반가울 법하다.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과 함께 보면 좋을 사랑스러운 소품이다.

DVD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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