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로 부활한 ‘불후의 명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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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 20면

소설 『돈키호테』(1605~15)의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는 풍운아로 살았다. 레판토 해전에 참전했던 그는 심한 부상을 입었고 나중엔 해적에게 포로로 잡혀 노예생활까지 했다. 극작가 데일 와서맨은 가난하고 불운했으나 풍자로 가득 찬 소설을 써냈던 세르반테스 자신이 바로 돈키호테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배우 한 명이 무대 위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를 오가는 독특한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그렇게 탄생했다. ‘맨 오브 라만차’는 원작의 엄청난 에피소드를 우겨넣으려고 고민하기보다 그것들을 한데 모아 다르되 비슷한 이야기 하나를 만들어낸다. 돈키호테가 자신을 환상으로부터 끌어내려는 이들에게 외치는, ‘현실은 진실의 적’이라는 경구가 그러한 예가 될 것이다.

스페인 지하 감옥, 신성모독죄로 수감된 세르반테스는 고참 죄수들 앞에서 자신의 소설이 어떤 내용인지 들려준다. 기사도 문학에 심취한 노인 알론조는 자신이 명예로운 기사 돈키호테라는 망상에 빠져 시종(侍從) 산초 판자를 거느리고 편력 여행을 떠난다.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해 공격하거나 이발사의 놋대야를 보물 황금 투구라고 우기던 그는 여관에서 일하는 여자 알돈자를 둘시네아라고 부르며 자신의 귀부인이 되어달라고 청한다. 여관을 찾는 남자들에게 창녀로 취급 받던 알돈자는 놀림을 받았다고 분노하는 동시에 혼란을 느낀다. 귀부인을 대하는 듯한 돈키호테의 태도가 그녀를 존귀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닐까 하고.

액자 구조를 취하는 ‘맨 오브 라만차’는 감옥에 있던 죄수들이 직접 무대를 설치하고 의상을 갈아입으며 공연을 하는 형식이다. 그런데도 해바라기가 펼쳐진 아득한 꽃길이나 돈키호테로서의 환상이 부서지는 냉혹한 회색 무대는 막이 바뀌는 공연 못지않게 완성도가 높고, 극의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전해준다.

다채로운 노래들도 좋다. 장중한 선율로 기사도 편력 여행을 선포하는 ‘맨 오브 라만차’, TV 시리즈 ‘앨리 맥빌’에도 등장했던 감미로운 사랑의 노래 ‘둘시네아’, 익살맞고 경쾌한 ‘맘브리노의 황금 투구’ 등이 대표곡. 뮤지컬 스타 조승우와 정성화가 돈키호테로 더블 캐스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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