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끌면 의혹증폭” 속결수사/정씨 검찰비호세력조사 어떻게 돼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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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관련 고위간부에 물증대가며 조사/“철저하게 파헤쳐서 명예 회복하자
속전속결,엄중처리­.
슬롯머신 업자들과의 유착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현직 고검장급을 포함,차장·부장검사 등 간부들을 무더기로 자체조사 하고 있는 검찰이 취하고 있는 입장이다.
설마설마 하던 일들이 현실로 드러나면서 검찰조직은 무겁고 침통한 분위기속에 수사 사령탑인 대검 김태정중수부장은 정식수사가 시작된 이후 연일 사무실에서 철야를 하고 있다. 김 중수부장은 『선·후배들을 단죄해야 하는 마당에 어떻게 마음편하게 집에 들어가 발뻗고 잘 수가 있느냐』는 말만을 할 뿐이다.
검찰은 대검중수부 1∼4과와 서울지검에서 차출된 홍준표·은진수검사 등을 총동원,수사에 착수한 뒤 하루만에 결국 이건개대전고검장이 수억대의 뇌물을 받은 사실 등 관련자들의 혐의를 대부분 확인했다.
동화은행비자금 조성사건·군비리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모두 중수부의 1개과가 전담했던 점을 고려할때 중수부의 4개과를 한꺼번에 투입한 것은 이 사건을 속전속결처리한다는 검찰 수뇌부의 절박한 심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수사가 늦어지면 온갖 구설수에 시달려 조직전체가 더 큰 상처를 받을게 뻔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사건을 마무리해야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25일 혐의사실이 드러난 검찰고위간부들에 대해 과연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놓고 심각한 고민을 하는 모습이다. 고검장급이 사법처리를 당한 예가 해방후 단 한번도 없는 상황임을 고려할때 이같은 고민은 이해될 수는 있는 부분이다. 검찰은 사법처리대상 관련자들에 대해서는 소환하는 대로 물증을 제시하고 설득해 철야조사를 하는 등의 사태는 없도록 할 방침이다.
수사검사와 피의자로 신분이 바뀌게 되지만 선·후배일 수 밖에 없는 사이에서 서로 얼굴을 붉히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게 한다는게 검찰의 생각이다.
검찰은 어차피 일이 벌어진 이상 실체적 진실은 반드시 규명하고 넘어가겠다는 각오다.
정식수사에 착수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검찰 내부에선 『검사들에 대한 수사가 유례가 없고 전체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자체 감찰을 통해 옷을 벗기는 선에서 마무리하자』는 의견도 강하게 제기됐었다.
하지만 여론의 성화에 밀렸든지 아니면 청와대의 뜻에 따른 것이든 결국 수사가 시작됐고 명예까지 상처를 받은 이상 「해볼때까지 해보자」는 분위기가 현재는 지배적이다.
기왕 수사를 하는 마당에 철저히 파헤쳐 실추된 명예를 조금이나마 회복하고 검찰사에 기록될 이 사건을 통해 검찰이 거듭나는 계기를 삼아야 한다는 자성인 것이다.
철저한 수사에 대한 검찰의 거듭된 강조는 수사를 마치고도 또다시 축소·은폐의혹이 제기될 경우 그때는 조직 전체가 더이상 버텨낼 수 없다는 수뇌부의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검찰은 그동안 문제됐던 모든 부분을 한꺼번에 묶어 수사를 펴고 있다.
이건개대전고검장 등 관련 고검장들뿐 아니라 정씨 형제와 정도 이상의 친분을 맺어온 것으로 거명되고 있는 차장·부장검사들에 대해서도 모두 한묶음으로 수사를 편다는 것이다.
검찰 수사에는 광주 국제PJ파 두목 여운환씨와 관련된 부분도 포함돼 있다. 여씨 관련은 대검감찰부에서 감찰조사를 폈고 1명의 부장검사가 사의를 표명했다는 부분까지 이미 언론에 보도됐지만 검찰은 이에 대한 공식발표를 늦추고 있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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